[어깨동무톡] 판문점 회동 이후, 희망과 과제

  • 날짜 : 20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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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피스레터 통권 17호에 기고된 글입니다.  

 

판문점 회동 이후, 희망과 과제

김동엽

 

사상 첫 남북미 판문점 회동이 있은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잠시 만나 인사만 나누고 헤어질 것 같았던 북미 정상 간 만남은 1시간 가까운 대화로 이어졌다. 사진 한 장 남길 것 같았던 상봉은 2~3주내 북미 실무회담 재개라는 성과까지 도출했다. 무언가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던 기대와 희망이 가득했건만 북미 실무회담조차 언제 열릴지 깜깜 무소식이다. 말은 풍년인데 실제 수확된 것은 없다. 한미연합 연습은 계획대로 실시되었고 이를 핑계로 판문점 회동 이후에만 북한은 5차례 미사일과 방사포를 쏘아 올렸다. 2018년이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있다. 한반도의 시계는 20171129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형을 발사하기 전으로 돌아간 것일까?

 

한반도 평화는 살아있다...

2019년 한반도는 지난 2018년을 생각하면 평화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대와 달리 북미대화가 정체되어 있고 남북관계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탓이기도 하다. 그래도 연일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소식이 끊이지 않았던 2017년 이전을 떠올리면 지금이 평화롭지 못하다는 말은 언감생심이다. 어려웠던 시절 생각은 못하고 희망과 욕심이 큰 탓인지도 모른다. 2018년 남북이 함께 만들어낸 판문점 선언평양선언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소중한 선물이었다.

 

지난 1년여를 되돌아보자. 2018년에만 정상 간의 만남이 세 차례나 이루어졌다. 남북 정상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 남북을 오가는 모습과 도보다리 환담 장면, 문대통령의 평양 시민을 향한 연설이 전한 감동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양 정상은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천명하고 남북관계 발전과 군사적 긴장완화와 전쟁위험 해소,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 나갈 것에 대해 합의했다. 남북한 주민들이 삶 속에서 70여년의 전쟁의 공포를 떨치고 비로소 평화가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1년 사이 2차례의 북미정상회담(싱가포르/하노이)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 역시 놀라운 일이다. 남북 정상의 만남이 남북관계 복원과 정상화를 넘어 비핵화 협상과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을 추동하는 촉진제 역할을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남북관계는 이제 더 이상 북핵문제와 북미관계를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인도하는 길라잡이다.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를 뒷받침하면서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를 여는 열쇠와 같다. ‘판문점 선언이후 남북관계 발전이 북미간 협상 동력을 유지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입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버팀목임엔 틀림없다.

 

비록 하노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는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하노이 이후 우리 정부의 노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북한으로부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까지 굴하지 않았던 끈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남북미 판문점 상봉이라는 명장면이 가능했다. ‘판문점 선언이후 시간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만들어 가는 노력의 과정이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한반도 평화번영은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길고 험한 과정인 만큼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먼 길, 오르막의 시작점에 서다.

우리 속담 중에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다. 어려운 일을 겪고 나면 단련이 되어 더 강해진다는 뜻이다. 쉼 없이 내달릴 것 만 같았던 남북관계가 경사가 심한 오르막 앞에 다다랐다. 통일각 2차 정상회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산의 정상이 보일 때부터 한 걸음 한 걸음이 더욱 힘들어지듯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먼 길을 떠나오며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닐 것이다. 판문점 선언 이후에도 수많은 장애물을 넘고 오르막을 올랐다. 그러나 진짜 오르막은 지금부터이다. 오르막에 오르기 전 잠시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그 동안 남북이 서로를 얼마나 생각해 왔는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해 판문점선언전후 남북관계가 달라졌다면 이제는 판문점 상봉을 기점으로 또 한 번 달라지고 진화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적지 않은 상실감을 느끼는 것은 지난 시간 하고자 한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간극이 컸기 때문이다. 과도한 자기충족적 예언은 실현 가능한 정책과 전략수립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이벤트성 해법과 단기적 치유법에는 한계가 있다. 남북관계가 먼 길이라면 정치적 고민을 앞세워 가시적인 성과에 연연하거나 급급할 필요는 없다.

 

판문점 회동으로 북미 간 대화 채널이 다시 열렸다고 남북관계까지 정상화됐다거나, 우리의 중재자 역할이 복원됐다는 당위론은 우리의 희망일 뿐이다. 중재자 역할에 대한 미련과 집요함보다 냉정하고 신중하게 되돌릴 수 없는 남북관계를 만들 담대함이 필요하다. 보다 근본적으로 북한의 변화와 선택을 염두에 두고 남북관계의 자율영역을 확보해 나가는 노력과 함께 정책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깨동무할 용기

판문점 만남 이후 한반도 정세는 더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중요 정치 일정으로 9월 유엔총회가 열리고, 101일 중국 건국 70주년과 106일 북중 수교 70주년을 계기로 김정은 위원장이 방중 해 북중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그 이전 북미실무회담이 열린다고 당장이라도 북미정상회담이 먼저 열릴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지난해 9월 평양선언에 합의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답방으로 4차 남북정상회담도 가능성이 열려있다. 시진핑 주석의 서울 방문 가능성도 있다. 가능성은 높지 않으나 북한을 향한 일본의 움직임도 지켜봐야 한다. 11월에 교황이 일본을 방문하는 만큼 북한 방문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대한 국면의 해결을 위해서는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향후 많은 정치 일정이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어떤 순서로 진행되어야할지 상상력을 발휘해 설계하고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그러나 상상력과 공상력은 다르다. 특히 외교와 안보의 영역은 상상력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실천하고 실행에 옮기는 용기가 필요하다. 남북관계가 여기에 머물러 있고 지금까지도 금강산을 다시 가지 못하는 것은 상상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촛불을 밝힌 것도 상상력이 아니라 시민들의 용기였다. 이제 정부차원의 일방적 Top-down만을 기대하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민간차원의 남북관계 재정립을 위한 Bottom-up 접근 방식이 조화를 이루어야 할 때이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남북이 당사자로서 한 번 잡은 손을 놓지 않을 용기가 아닐까 한다. 우리 앞에 놓인 오르막은 조금 힘들어도 남북이 어렵게 잡은 손 놓지 않고 분단 않을 용기를 가진다면 너끈히 이겨낼 길이다. 아무리 어렵고 험한 길이라도 남과 북이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갈 수만 있다면 정말 즐겁고 행복하지 않을까

 


 

 

필자소개 

김동엽 교수는 현재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며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방부/통일부/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과 북한연구학회 총무위원장을 맡고 있다. 북한군사와 국방안보문제 전문가로 연구와 함께 대중강연과 언론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