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인터뷰는 소식지 145호 '만나야 평화'에 게재되었습니다.
비로소 이웃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이선용, 류재수 회원
얼마 전 어린이어깨동무에 감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오랜 회원이었던 이선용, 류재수 부부께서 조금씩 모았다며 큰 금액을 어린이어깨동무에 기부하신 것입니다. 류재수 선생님은 ‘백두산 이야기’, ‘노란 우산’ 등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그림책 작가입니다. 이선용 선생님은 중학교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으셨습니다. 어린이어깨동무에서 두 분의 보금자리인 충청남도 홍성군을 찾았습니다.
홍성 작업실에서
- 잘 지내셨나요? 홍성으로 내려가신지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홍성에서의 삶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저희 부부 모두 서울에서 계속 살다가 2012년 홍성으로 내려왔습니다. 저는 홍성이 고향이지만, 사실 낯선 곳이라서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과 친해지고,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죠. 이제는 홍성이 서울보다 더 익숙해졌어요. 복잡한 서울에 오면 빨리 홍성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조용한 자연에서 살아가는 일은 복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골 단독주택으로 이사 오니 도시의 아파트가 편했구나 느낄 정도로 할 일은 많네요.
- 대학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어린이 그림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1970년대에 우연한 기회에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의 뿌리인 해송어린이걱정모임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해송보육학교에서 미술 선생으로도 있었고, 창신동 해송아기둥지에서도 일했었죠. 그러면서 어린이 문제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당시 어린이책의 그림들이 너무 열악하고, 성의가 없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어린이를 위한 그림을 그리자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해송 덕분에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지금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던 것이죠.
노란우산
- ‘노란 우산’은 2002년 뉴욕타임즈에서 최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노란 우산’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노란 우산’은 만드는 데 10년도 넘게 걸렸습니다. 어떤 생각도 담지 않으려고 했죠. 우리가 목도리를 고를 때도, 예쁜 디자인을 보고 고르려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다양한 색깔을 담아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국제어린이도서협의회에서 최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되었을 때, ‘노란 우산’은 글도 없지만, 스토리도 없다는 것이 선정의 큰 이유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것이 언어의 장벽, 국경과 문화를 넘어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습니다.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병원에서 왼쪽부터 류재수, 이기범, 정병호
- ‘해송’으로 어린이를 위한 활동을 시작하셨다고 하셨는데요. 이후 어린이어깨동무와 함께하시면서 가족들과 함께 북녘에 방문하여 북녘 어린이들도 만났습니다. 흔하지 않은 경험이라고 생각 합니다.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10대였던 아들들까지 다함께 가족이 어린이어깨동무와 북녘에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버스가 출발해야 하는데 막내가 늦게 나타난 적이 있었어요. 평양에서 만난 여자애와 헤어지며 악수하는데, 그 여자애가 손을 꽉 쥐고 놓아주지 않더래요. 가지말라는 뜻이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손을 뿌리치고 나오냐며, 그래서 늦었다 울기에, 참 잘했다고 칭찬해줬습니다. 이 친구는 지금 음악을 하는데, 아직도 밥먹다가도 그 기억이 가끔 떠오른다고 합니다. 그때만 해도 교류가 계속될 줄 알았는데, 지금은 단절된 것이 마음이 아픕니다. 하루빨리 재개되었으면 하는데, 상황은 어렵기만 하네요.
최근에 북녘에 물난리가 났었죠. 그럴 때마다 북녘 어린이들은 잘 있을까 생각이 납니다. 겨울만 되면, 손이 시려워도 북녘 어린이들이 생각이 납니다. 어린이어깨동무에서 내복 보내기 운동을 한 적이 있었어요. 북녘에 지원할 때마다, 어린이들에게 지원이 되지 않는다, 다 군대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잖아요. 그때 정병호 선생님이 ‘그렇다면 어린이만을 위한 어린이 내복을 보내자‘고 썼던 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비슷한 생각에 눈물이 났죠. 어린이어깨동무에서 이렇게 한발 한발 행동하는데, 뒤에서 걱정만 하던 것이 마음에 걸렸죠.
- 남과 북, 일본 어린이들이 참여한 공동화 작업에도 류재수 선생님이 함께해주셨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셨나요?
모든 과정이 아직도 하나의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일본에서 유명한 그림책 작가인 다시마 세이조 선생님이 도쿄 공동화 전시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어린이 그림은 사실 관심을 받기가 힘들잖아요. 매스컴에서 관심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려고 바쁜 와중에도 시간 내서 방문한 것이었죠. 너무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언론에서 취재를 왔었죠.
남과 북, 일본과 재일동포 어린이들과 함께 ‘평화의 나무’ 그림을 그렸습니다. 뿌리와 줄기, 잎, 열매 등 다양한 요소가 모여 하나의 나무가 됩니다. 나무는 비유적으로도 많이 쓰잖아요? 뿌리가 되었다, 열매를 맺었다는 많은 말들이 나무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부터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죠. 보편적이지만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 ‘평화의 나무’를 함께 그렸죠.
- 현재 계획하고 있는 다음 작품은 어떤 내용인가요?
‘금강산 이야기’라는 그림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순이라는 소녀의 마음을 통해 금강산이 어떻게 아름다워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하면서, AI가 많은 것을 만들고, 어릴 때부터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죠.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 어린이 문화나 그림책의 변화를 계속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리는 작품은 그런 트렌드에 맞추는 작품은 아닙니다. ‘나의 시대’를 완성하기 위한 그림책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도덕적 기준처럼 많은 것이 달라지지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순이와 금강산 이야기를 통해 어머니, 할머니에서 더 올라가서 조상님들로부터 이어져 온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 어린이어깨동무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웃음) 이번에 어린이어깨동무 사무국에서 홍성에 온다고 할 때, 다른 손님이 올 때와는 달리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오랫동안 함께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어린이어깨동무 사람들이 인간적이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들 진심으로 남과 북의 어린이를 생각하고 있죠.
뉴욕타임즈에서 최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되었을 때, 뉴스를 본 아들이 자랑스러운 아빠라며 일기를 쓴 일이 있었어요. 그때 짜장면을 사주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너희들, 이기범, 정병호 아저씨 알지? 아빠가 훌륭한 사람이 아니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거들다 보니까 좋은 일이 생긴 거야.”라고 하며 좋은 친구들을 만나라고 이야기했죠.
해송을 만나고, 어린이 그림책을 그리고 어깨동무 활동까지 이어진 것이죠. 해송과 어린이어깨동무를 통해서 비로소 이웃을 바라보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해외평화운동단체들과 함께 ‘드로잉 호프’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내외에서 남북 어린이의 그림편지와 동아시아, 디아스포라 어린이들의 그림을 전시하여 한반도 평화 중요성을 알리고, 그림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나누는 프로젝트입니다. 이선용, 류재수 회원님의 후원금은 ‘드로잉 호프’ 프로젝트에 소중하게 사용하겠습니다. |
* 이 인터뷰는 소식지 145호 '만나야 평화'에 게재되었습니다.
비로소 이웃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이선용, 류재수 회원
얼마 전 어린이어깨동무에 감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오랜 회원이었던 이선용, 류재수 부부께서 조금씩 모았다며 큰 금액을 어린이어깨동무에 기부하신 것입니다. 류재수 선생님은 ‘백두산 이야기’, ‘노란 우산’ 등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그림책 작가입니다. 이선용 선생님은 중학교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으셨습니다. 어린이어깨동무에서 두 분의 보금자리인 충청남도 홍성군을 찾았습니다.
홍성 작업실에서
- 잘 지내셨나요? 홍성으로 내려가신지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홍성에서의 삶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저희 부부 모두 서울에서 계속 살다가 2012년 홍성으로 내려왔습니다. 저는 홍성이 고향이지만, 사실 낯선 곳이라서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과 친해지고,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죠. 이제는 홍성이 서울보다 더 익숙해졌어요. 복잡한 서울에 오면 빨리 홍성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조용한 자연에서 살아가는 일은 복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골 단독주택으로 이사 오니 도시의 아파트가 편했구나 느낄 정도로 할 일은 많네요.
- 대학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어린이 그림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1970년대에 우연한 기회에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의 뿌리인 해송어린이걱정모임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해송보육학교에서 미술 선생으로도 있었고, 창신동 해송아기둥지에서도 일했었죠. 그러면서 어린이 문제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당시 어린이책의 그림들이 너무 열악하고, 성의가 없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어린이를 위한 그림을 그리자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해송 덕분에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지금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던 것이죠.
노란우산
- ‘노란 우산’은 2002년 뉴욕타임즈에서 최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노란 우산’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노란 우산’은 만드는 데 10년도 넘게 걸렸습니다. 어떤 생각도 담지 않으려고 했죠. 우리가 목도리를 고를 때도, 예쁜 디자인을 보고 고르려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다양한 색깔을 담아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국제어린이도서협의회에서 최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되었을 때, ‘노란 우산’은 글도 없지만, 스토리도 없다는 것이 선정의 큰 이유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것이 언어의 장벽, 국경과 문화를 넘어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습니다.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병원에서 왼쪽부터 류재수, 이기범, 정병호
- ‘해송’으로 어린이를 위한 활동을 시작하셨다고 하셨는데요. 이후 어린이어깨동무와 함께하시면서 가족들과 함께 북녘에 방문하여 북녘 어린이들도 만났습니다. 흔하지 않은 경험이라고 생각 합니다.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10대였던 아들들까지 다함께 가족이 어린이어깨동무와 북녘에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버스가 출발해야 하는데 막내가 늦게 나타난 적이 있었어요. 평양에서 만난 여자애와 헤어지며 악수하는데, 그 여자애가 손을 꽉 쥐고 놓아주지 않더래요. 가지말라는 뜻이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손을 뿌리치고 나오냐며, 그래서 늦었다 울기에, 참 잘했다고 칭찬해줬습니다. 이 친구는 지금 음악을 하는데, 아직도 밥먹다가도 그 기억이 가끔 떠오른다고 합니다. 그때만 해도 교류가 계속될 줄 알았는데, 지금은 단절된 것이 마음이 아픕니다. 하루빨리 재개되었으면 하는데, 상황은 어렵기만 하네요.
최근에 북녘에 물난리가 났었죠. 그럴 때마다 북녘 어린이들은 잘 있을까 생각이 납니다. 겨울만 되면, 손이 시려워도 북녘 어린이들이 생각이 납니다. 어린이어깨동무에서 내복 보내기 운동을 한 적이 있었어요. 북녘에 지원할 때마다, 어린이들에게 지원이 되지 않는다, 다 군대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잖아요. 그때 정병호 선생님이 ‘그렇다면 어린이만을 위한 어린이 내복을 보내자‘고 썼던 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비슷한 생각에 눈물이 났죠. 어린이어깨동무에서 이렇게 한발 한발 행동하는데, 뒤에서 걱정만 하던 것이 마음에 걸렸죠.
- 남과 북, 일본 어린이들이 참여한 공동화 작업에도 류재수 선생님이 함께해주셨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셨나요?
모든 과정이 아직도 하나의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일본에서 유명한 그림책 작가인 다시마 세이조 선생님이 도쿄 공동화 전시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어린이 그림은 사실 관심을 받기가 힘들잖아요. 매스컴에서 관심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려고 바쁜 와중에도 시간 내서 방문한 것이었죠. 너무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언론에서 취재를 왔었죠.
남과 북, 일본과 재일동포 어린이들과 함께 ‘평화의 나무’ 그림을 그렸습니다. 뿌리와 줄기, 잎, 열매 등 다양한 요소가 모여 하나의 나무가 됩니다. 나무는 비유적으로도 많이 쓰잖아요? 뿌리가 되었다, 열매를 맺었다는 많은 말들이 나무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부터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죠. 보편적이지만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 ‘평화의 나무’를 함께 그렸죠.
- 현재 계획하고 있는 다음 작품은 어떤 내용인가요?
‘금강산 이야기’라는 그림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순이라는 소녀의 마음을 통해 금강산이 어떻게 아름다워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하면서, AI가 많은 것을 만들고, 어릴 때부터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죠.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 어린이 문화나 그림책의 변화를 계속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리는 작품은 그런 트렌드에 맞추는 작품은 아닙니다. ‘나의 시대’를 완성하기 위한 그림책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도덕적 기준처럼 많은 것이 달라지지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순이와 금강산 이야기를 통해 어머니, 할머니에서 더 올라가서 조상님들로부터 이어져 온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 어린이어깨동무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웃음) 이번에 어린이어깨동무 사무국에서 홍성에 온다고 할 때, 다른 손님이 올 때와는 달리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오랫동안 함께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어린이어깨동무 사람들이 인간적이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들 진심으로 남과 북의 어린이를 생각하고 있죠.
뉴욕타임즈에서 최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되었을 때, 뉴스를 본 아들이 자랑스러운 아빠라며 일기를 쓴 일이 있었어요. 그때 짜장면을 사주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너희들, 이기범, 정병호 아저씨 알지? 아빠가 훌륭한 사람이 아니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거들다 보니까 좋은 일이 생긴 거야.”라고 하며 좋은 친구들을 만나라고 이야기했죠.
해송을 만나고, 어린이 그림책을 그리고 어깨동무 활동까지 이어진 것이죠. 해송과 어린이어깨동무를 통해서 비로소 이웃을 바라보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해외평화운동단체들과 함께 ‘드로잉 호프’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내외에서 남북 어린이의 그림편지와 동아시아, 디아스포라 어린이들의 그림을 전시하여 한반도 평화 중요성을 알리고, 그림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나누는 프로젝트입니다. 이선용, 류재수 회원님의 후원금은 ‘드로잉 호프’ 프로젝트에 소중하게 사용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