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렌즈로 읽는 분단
전 세계가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2026년에 시민들과 어떤 곳을 함께 방문하면 ‘이 시대의 평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지 생각하던 끝에,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곁의 분단을 만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그러하듯, 한반도에 사는 우리도 전쟁과 분단으로 목숨을 잃고 폭력에 고통받은 역사가 있었습니다. 또한 이 분단은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인권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해 왔고 12.3 내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민주주의’ 렌즈로 ‘분단’을 바라보는 길을 마련했습니다.
4월 25일, 날씨도 화창하고 수많은 축제와 행사들이 집중된 소중한 주말에 날씨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남영역 뒷골목의 옛 대공분실 앞에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오늘의 피스로드를 이끌어주실 정영철 소장님이 마음이 많이 힘들 수 있는 현장으로 들어가기 전, 대공분실이 존재했던 시대적 배경과 함께 ‘남영동’의 역사를 짚어 주었습니다.
끌려온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드르륵~” 크고 위협적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옛 남영동 대공분실(M2)’의 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영화 ‘1987’과 ‘남영동 1985’에서 보았듯이 영문도 모르고 눈을 가린 채 끌려온 사람들이 ‘국제해양연구소’라는 간판으로 위장된 대공분실에 잡혀오면 가장 먼저 이 “드르륵”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방향과 높이를 알 수 없도록, 나선형 계단을 따라 조사실로 올라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문과 협박에 시달렸습니다. 지난해부터 당시 조사실의 모습이 복원되어 시민들에게 국가폭력의 현장이 공개되고 있는데, 12세 이하의 어린이는 관람이 제한되는 곳들이 있습니다. 짐작하시는 것처럼 구체적인 고문 내용 등이 전시되어 있고, 내부 조도가 낮고, 사운드가 포함된 전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공간을 직접 마주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당시에 이를 직접 겪었을 사람들의 고통에 조금이나마 공감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대공분실 관람을 마치며 군사독재정권 아래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며 목숨을 바친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기억의 벽’ 앞에서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당시 애쓰신 더 많은 분의 성함이 이곳에 새겨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이곳에 새길 이름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술가 홍성담이 역사를 마주해온 방법
대공분실을 나와 향한 곳은 맞은 편(M1)에서 열리고 있는 ‘홍성담 독일 유배 작품 35년 귀환 기념 전시’ <다시 돌아온 편지> 전시장이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겪고, 그 현장을 판화로 남기기 시작한 이래로 평생을 시대의 아픔을 작품에 담아온 홍성담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피스로드 참가자들을 위해 멀리 부산에서 오신 이번 전시의 기획자 신용철 선생님은 홍성담 작가의 일생과 작품세계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 작품들이 독일로 반출된 스토리와 작가의 구명운동을 위해 독일에서 전시를 진행하던 시간, 그리고 35년 만에 돌아와 한국의 시민들을 만나게 된 긴 여정을 담담하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이 배경을 알고 보니 작품들이 더욱 눈이 잘 들어왔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창작한 작품, 당시의 노동현실을 보여주는 작품과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고찰을 통해 완성한 작품 등은 현재를 살고 있는 관람객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특히 초기 작품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의 작품을 함께 관람할 수 있어, 평범한 예술가가 시대의 아픔을 마주하고 역사의 진실을 남기기 위해 변화하는 모습을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의 전시를 계기로 고문 당사자들이 직접 창작한 국가폭력 주제 작품 ‘남영동-칠성판’과 홍성담 작가가 1989년 남산 안기부 조사실에서 물고문을 당했던 기억을 담은 ‘욕조-어머니 고향의 푸른 바다가 보여요’는 앞선 ‘대공분실’ 관람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기념사진은 12.3 내란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킨 키세스군단 앞에서 촬영했습니다. 고난을 이겨온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용산, 빼앗긴 땅의 역사
민주화운동기념관을 나온 우리는 정영철 소장님과 함께 전쟁기념관으로 가는 길에 일본군과 미군이 머물던 흔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이 조선 점령을 위해 주둔하던 곳, 강제징용 당한 우리 청년들이 일본으로 떠나던 곳도 용산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해방이 되자 그 땅에는 미군이 들어왔고, 지금도 많은 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 땅을 오롯이 우리 시민들에게 되돌리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지 잠시 함께 고민해 보았습니다.

전쟁을 기념(?)하는 곳
세계 곳곳에는 전쟁박물관, 추모관들이 존재합니다. 전쟁을 통해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다시는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쟁기념관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전쟁을 통해 가장 많이 희생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수많은 평범한 민간인들이 가장 많이 죽고, 다칩니다. 우리의 한국전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곳 어디에도 민간인을 기억하는 곳은 없습니다.
남과 북 사이에 더 이상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 북녘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하는데 전쟁기념관에서는 여전히 적대적인 마음을 감추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내란이 일어난 곳, 그곳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다
이렇게 서로 미워하는 마음을 이용해 여전히 누군가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12.3 내란처럼 말입니다. 전쟁기념관에서 고개를 돌리면 국방부 건물이 보입니다. 얼마 전까지 ‘용산 대통령실’로 쓰이던 곳이자, 12.3내란이 일어난 곳입니다. 남북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이용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앗아가려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분단이 얼마나 우리 일상 가까이 있는지 다시 한번 느끼며 피스로드 1강을 마무리 했습니다.
다음 피스로드는 5월 16일 동두천에서 진행됩니다. 많은 기대와 참여 바랍니다.
민주주의 렌즈로 읽는 분단
4월 25일, 날씨도 화창하고 수많은 축제와 행사들이 집중된 소중한 주말에 날씨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남영역 뒷골목의 옛 대공분실 앞에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오늘의 피스로드를 이끌어주실 정영철 소장님이 마음이 많이 힘들 수 있는 현장으로 들어가기 전, 대공분실이 존재했던 시대적 배경과 함께 ‘남영동’의 역사를 짚어 주었습니다.
끌려온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드르륵~” 크고 위협적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옛 남영동 대공분실(M2)’의 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영화 ‘1987’과 ‘남영동 1985’에서 보았듯이 영문도 모르고 눈을 가린 채 끌려온 사람들이 ‘국제해양연구소’라는 간판으로 위장된 대공분실에 잡혀오면 가장 먼저 이 “드르륵”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방향과 높이를 알 수 없도록, 나선형 계단을 따라 조사실로 올라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문과 협박에 시달렸습니다. 지난해부터 당시 조사실의 모습이 복원되어 시민들에게 국가폭력의 현장이 공개되고 있는데, 12세 이하의 어린이는 관람이 제한되는 곳들이 있습니다. 짐작하시는 것처럼 구체적인 고문 내용 등이 전시되어 있고, 내부 조도가 낮고, 사운드가 포함된 전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공간을 직접 마주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당시에 이를 직접 겪었을 사람들의 고통에 조금이나마 공감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대공분실 관람을 마치며 군사독재정권 아래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며 목숨을 바친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기억의 벽’ 앞에서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당시 애쓰신 더 많은 분의 성함이 이곳에 새겨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이곳에 새길 이름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술가 홍성담이 역사를 마주해온 방법
대공분실을 나와 향한 곳은 맞은 편(M1)에서 열리고 있는 ‘홍성담 독일 유배 작품 35년 귀환 기념 전시’ <다시 돌아온 편지> 전시장이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겪고, 그 현장을 판화로 남기기 시작한 이래로 평생을 시대의 아픔을 작품에 담아온 홍성담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피스로드 참가자들을 위해 멀리 부산에서 오신 이번 전시의 기획자 신용철 선생님은 홍성담 작가의 일생과 작품세계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 작품들이 독일로 반출된 스토리와 작가의 구명운동을 위해 독일에서 전시를 진행하던 시간, 그리고 35년 만에 돌아와 한국의 시민들을 만나게 된 긴 여정을 담담하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이 배경을 알고 보니 작품들이 더욱 눈이 잘 들어왔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창작한 작품, 당시의 노동현실을 보여주는 작품과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고찰을 통해 완성한 작품 등은 현재를 살고 있는 관람객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특히 초기 작품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의 작품을 함께 관람할 수 있어, 평범한 예술가가 시대의 아픔을 마주하고 역사의 진실을 남기기 위해 변화하는 모습을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의 전시를 계기로 고문 당사자들이 직접 창작한 국가폭력 주제 작품 ‘남영동-칠성판’과 홍성담 작가가 1989년 남산 안기부 조사실에서 물고문을 당했던 기억을 담은 ‘욕조-어머니 고향의 푸른 바다가 보여요’는 앞선 ‘대공분실’ 관람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기념사진은 12.3 내란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킨 키세스군단 앞에서 촬영했습니다. 고난을 이겨온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용산, 빼앗긴 땅의 역사
민주화운동기념관을 나온 우리는 정영철 소장님과 함께 전쟁기념관으로 가는 길에 일본군과 미군이 머물던 흔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이 조선 점령을 위해 주둔하던 곳, 강제징용 당한 우리 청년들이 일본으로 떠나던 곳도 용산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해방이 되자 그 땅에는 미군이 들어왔고, 지금도 많은 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 땅을 오롯이 우리 시민들에게 되돌리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지 잠시 함께 고민해 보았습니다.
전쟁을 기념(?)하는 곳
세계 곳곳에는 전쟁박물관, 추모관들이 존재합니다. 전쟁을 통해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다시는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쟁기념관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전쟁을 통해 가장 많이 희생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수많은 평범한 민간인들이 가장 많이 죽고, 다칩니다. 우리의 한국전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곳 어디에도 민간인을 기억하는 곳은 없습니다.
남과 북 사이에 더 이상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 북녘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하는데 전쟁기념관에서는 여전히 적대적인 마음을 감추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내란이 일어난 곳, 그곳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다
이렇게 서로 미워하는 마음을 이용해 여전히 누군가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12.3 내란처럼 말입니다. 전쟁기념관에서 고개를 돌리면 국방부 건물이 보입니다. 얼마 전까지 ‘용산 대통령실’로 쓰이던 곳이자, 12.3내란이 일어난 곳입니다. 남북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이용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앗아가려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분단이 얼마나 우리 일상 가까이 있는지 다시 한번 느끼며 피스로드 1강을 마무리 했습니다.
다음 피스로드는 5월 16일 동두천에서 진행됩니다. 많은 기대와 참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