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어깨동무 30주년을 맞이하며 2
여전히 지킴이, 이음이, 열음이… 그렇게 이어진 희망!
김도혜(어린이어깨동무 청년회원)
2017년의 평화이음이 활동을 끝으로 어깨동무와 멀어진 삶을 산 지 9년째 되는 해. 완전해지는 숫자 10이 되기 전인 아홉수의 해에 나는 어린이어깨동무로 돌아왔다. 마침 바쁘게 달리던 인생에 쉼표를 찍는 시기였고, 잠시 풍경을 돌아보며 숨을 돌리던 시기였다. 그때 딱, 내 유년기를 지켜봐 주었던 평화이음이 선생님 ‘아오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깨동무.
새삼스럽지만 놀랍지는 않은 이름이었다. 지난 9년 동안,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으나, 내 마음속에서 어깨동무가 지워졌던 적은 없었다. 어깨동무에서의 기억이 있었기에 다양한 나라를 경험하며 다른 문화와 정서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어깨동무에서의 경험 덕분에 나의 뿌리를 설명할 때 적확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수없이 다양한 사회에서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도 나의 정체성만은 흔들리지 않고 ‘내가 나’인 그대로, 당당하게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어깨동무 30주년.
어깨동무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30주년까지 어깨동무 활동이 이어져 왔다는 소식은 새삼스러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2017년, 어깨동무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 이후로, 아홉 해를 지나는 동안 나는 많이 변했다. 회의감에 잠식됐고, 체념에 익숙해졌으며, 평화를 잊어버린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샌가 어깨동무의 활동도 이어지지 못하고 있으리라, 나도 모르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안녕, 친구야” 그 단순한 한마디를 건네는 목소리들은 여전히 지치지 않았고, 그 말의 힘은 줄어들지 않았다.
어린이어깨동무 30주년.
감동적이었다. 행사에 참여했던 다른 지킴이, 이음이들이 말했던 것처럼 어린이어깨동무를 만들고, 지켜준 어른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음에 감사함을 절실히 느끼는 날이었다.
모두가 경험하는 사회 초년생의 시기에 나 또한 뼈저리게 느꼈다. 꿈을 꾸는 법을 잃지 않고, 희망의 노래를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꿈은 현실이라는 잣대 앞에서 너무도 무력하고, 희망의 소리는 분노의 소리에 묻히기 너무도 쉽다. 하지만 꿈은 물질의 세계에서 소멸하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영원불멸한다. 강렬하게 타올랐다 금방 꺼지는 분노의 소리와 다른 희망의 소리는 옅을지라도 은은하게 모든 사람의 곁에 남아 끊임없이 울린다.
그 모든 것을 알려주었던 어른들이 내 유년기를 지켜주었고, 여전히 어린 아이들을 지켜주고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를 일깨워주는 깊은 감동의 울림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행복했습니다.
저의 쉼표가 테두리만 뚜렷한 기호가 아닌, 속까지 꽉 찬 커다란 추억이 되는 것 같아 무엇보다 큰 충만함을 느끼는 하루였습니다.
#어린이어깨동무 30주년을 맞이하며 2
여전히 지킴이, 이음이, 열음이… 그렇게 이어진 희망!
김도혜(어린이어깨동무 청년회원)
2017년의 평화이음이 활동을 끝으로 어깨동무와 멀어진 삶을 산 지 9년째 되는 해. 완전해지는 숫자 10이 되기 전인 아홉수의 해에 나는 어린이어깨동무로 돌아왔다. 마침 바쁘게 달리던 인생에 쉼표를 찍는 시기였고, 잠시 풍경을 돌아보며 숨을 돌리던 시기였다. 그때 딱, 내 유년기를 지켜봐 주었던 평화이음이 선생님 ‘아오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깨동무.
새삼스럽지만 놀랍지는 않은 이름이었다. 지난 9년 동안,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으나, 내 마음속에서 어깨동무가 지워졌던 적은 없었다. 어깨동무에서의 기억이 있었기에 다양한 나라를 경험하며 다른 문화와 정서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어깨동무에서의 경험 덕분에 나의 뿌리를 설명할 때 적확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수없이 다양한 사회에서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도 나의 정체성만은 흔들리지 않고 ‘내가 나’인 그대로, 당당하게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어깨동무 30주년.
어깨동무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30주년까지 어깨동무 활동이 이어져 왔다는 소식은 새삼스러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2017년, 어깨동무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 이후로, 아홉 해를 지나는 동안 나는 많이 변했다. 회의감에 잠식됐고, 체념에 익숙해졌으며, 평화를 잊어버린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샌가 어깨동무의 활동도 이어지지 못하고 있으리라, 나도 모르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안녕, 친구야” 그 단순한 한마디를 건네는 목소리들은 여전히 지치지 않았고, 그 말의 힘은 줄어들지 않았다.
어린이어깨동무 30주년.
감동적이었다. 행사에 참여했던 다른 지킴이, 이음이들이 말했던 것처럼 어린이어깨동무를 만들고, 지켜준 어른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음에 감사함을 절실히 느끼는 날이었다.
모두가 경험하는 사회 초년생의 시기에 나 또한 뼈저리게 느꼈다. 꿈을 꾸는 법을 잃지 않고, 희망의 노래를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꿈은 현실이라는 잣대 앞에서 너무도 무력하고, 희망의 소리는 분노의 소리에 묻히기 너무도 쉽다. 하지만 꿈은 물질의 세계에서 소멸하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영원불멸한다. 강렬하게 타올랐다 금방 꺼지는 분노의 소리와 다른 희망의 소리는 옅을지라도 은은하게 모든 사람의 곁에 남아 끊임없이 울린다.
그 모든 것을 알려주었던 어른들이 내 유년기를 지켜주었고, 여전히 어린 아이들을 지켜주고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를 일깨워주는 깊은 감동의 울림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행복했습니다.
저의 쉼표가 테두리만 뚜렷한 기호가 아닌, 속까지 꽉 찬 커다란 추억이 되는 것 같아 무엇보다 큰 충만함을 느끼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