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화[피스로드 3강]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현장, 골령골과 노근리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현장, 골령골과 노근리


6월 17일, 여름 뙤약볕 아래 어린이어깨동무는 시민들과 함께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이 우리의 삶을 덮쳤던 잔인했던 현장에서 평화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대전과 충북 영동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임재근 선생님과 함께 한국전쟁 시기에 민간인들이 학살당한 현장을 찾아 아픈 역사의 진실을 마주했습니다. 


테미오래

본격적으로 학살의 현장으로 가기 전, 우리는 테미오래를 찾아 한국전쟁 시기 우리 정부의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이 곳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관사촌으로 충남도지사 공관 등 10동의 관사가 있던 곳입니다. 현재는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곳으로, 테미오래라는 이름은 둥그렇게 테를 둘러쌓은 작은 산성 ‘테미’와 동네의 골목 안 몇 집이 한 이웃이 되어 사는 구역이란 뜻의 순우리말 ‘오래’를 합성한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전으로 피난 온 이승만 대통령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곳을 임시 경무대로 사용하면서, 6월 27일 밤 이곳으로 비밀리에 대전방송 관계자를 불러 “서울 사수” 연설을 녹음하여 전국에 방송했습니다. 몇 시간 후인 6월 28일 새벽, 이승만 정부는 한강대교를 아무 예고 없이 폭파하여 수백 명을 죽게 하고 한강 이북 주민의 피난길을 막았습니다. 정작 이승만 대통령 본인은 7월 1일 새벽, 이곳을 떠나 더 먼 부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이러한 당시의 상황은 테미오래의 전시를 통해 자세히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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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형무소 터

이렇게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이승만 정부는 자신들을 비판하는 국민들에게는 더욱 가혹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우리는 대전형무소 터에서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대전형무소는 일제가 영등포 이남의 독립운동가와 사상범을 수감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이곳에서 여운형, 안창호, 김창숙 등을 포함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렀다고 합니다. 독립 후에도 이곳은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좌파’로 몰아 가두어두는 곳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등에 관련된 사람들도 이곳에 수감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대전형무소 재소자 수는 약 4,000명이었고 이중 2,000명 정도는 정치·사상범이었다고합니다. 전쟁 발발 후에는 대대적인 예비검속으로 보도연맹원 등이 대전형무소에 대거 수감되었습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한국전쟁 기간 동안, 형무소 안팎과 산내 골령골 등지에서 무참히 학살되었습니다. 


1984년 대전형무소가 이전되고 형무소가 있던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현재 남아 있는 감옥의 흔적은 우물 하나와 망루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찾은 우물에서도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임재근 선생님의 해설을 들은 참가자들은 아픈 마음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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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 골령골


대전형무소 터를 떠난 우리는 그곳에서 산내 골령골로 끌려와 죽임을 당한 이들이 끌려왔을 그 길을 따라 산내 골령골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20여 일간 법적 절차 없이 충남지구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재소자 등 최소 1,800명 이상, 최대 7천 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집단 학살당해 암매장당한 비극의 현장입니다. 학살은 9·28수복 이후에도 계속되어, 부역 혐의를 받은 이들 중 일부는 사형을 선고받아 산내 골령골로 끌려가 학살당했다고 합니다. 


학살 사건 직후 산내 골령골 현장을 방문한 영국 일간지 <데일리 워커>의 앨런 위닝턴 기자는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라는 팜플렛 기사에서 “6개의 구덩이는 6피트 깊이에 6~12피트의 너비로 파여 있었다”며, “가장 큰 구덩이가 200야드였고, 2개는 100야드, 가장 작은 것은 30야드였다”고 밝히고 있어, 그 구덩이들을 모두 이으면 1km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내 골령골을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 부른다고 하니 국가폭력의 잔인함을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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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설명을 들은 참가자들은 모두 무거운 마음으로 학살현장을 살폈습니다. 이어서 학살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마음과,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추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정영철 소장은 추모사를 통해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몫”이라며 “골령골은 분단, 전쟁, 그리고 학살의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공간으로, 이러한 역사를 잊지 않고 생명평화의 길로 한발 한발 걸어가겠다.”다는 약속으로 추모사를 대신했습니다. 이어서 참가자들을 대표해 추모 헌화를 한 어깨동무 평화교육 교사모임의 심은보 선생님은 “현장에서 마주하니 글로 알고 있었던 것과는 그 무게가 다르다.”며 “삶으로 응답하겠습니다”라는 묵직한 다짐으로 추모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은 각자 추모의 마음을 흰색 리본에 담아 골령골 골짜기에 묶어두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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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산내 골령골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단위 위령시설이자 평화역사공원(진실과 화해의 숲)을 조성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약속이 꼭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과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안고, 우리는 또 다른 전쟁 시 민간인 학살지인 노근리로 향했습니다.


노근리


6월 18일 아침, 너무나 화창한 날씨와 생명의 힘이 가득한 산과 들을 마주하며, 삶의 소중함이 새삼스러운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역사의 진실은 참혹했습니다. 노근리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5일부터 7월 29일까지 5일 동안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하가리 및 황간면 노근리의 경부선 철도 및 쌍굴 일대에서 미 공군기에 의한 공중 폭격과 미 제1기병사단 소속 미군들의 무차별적인 기관총 및 소총 사격에 의해 수백 명의 민간인들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1950년 7월 23일 주곡리 마을을 비우라는 명령을 받은 주민들은 인근 산골마을인 임계리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7월 25일 저녁 미군은 임계리에 모인 피난민 500~600명을 남쪽으로 피난하도록 하였고, 피난민들은 미군에 의해 국도가 아닌 경부선 철도 위로 올라가 남쪽으로 이동하였다고 합니다. 피난민들이 노근리 부근에 이르렀을 때 미군은 검문검색을 했고 피난민들이 잠시 앉아서 쉬고 있었습니다. 이 때 갑자기 나타난 미군 비행기가 피난민에게 폭탄 및 기관총을 난사하였고, 다수의 피난민이 사망하였습니다. 폭격을 피해 피난민들은 노근리 철교 아래 쌍굴다리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러자 미군들은 쌍굴다리에 갇혀있는 피난민들을 향해 7월 26일 오후부터 7월 29일 오전까지 3박 4일 동안 쌍굴 양쪽에서 기관총 사격을 지속하였고 200~400여명의 피난민들이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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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의 세월동안 유족들은 소설발표, 연구논문 발표 등 끊임없는 진상규명활동을 전개하였고 국내 언론, 신문, 방송을 통해 노근리사건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故 정은용 선생님의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소설 발표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노근리사건은 1999년 9월 미국 AP통신의 보도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노근리평화공원은 2004년 제정된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조성되었습니다. 노근리평화기념관에는 노근리사건의 진상규명 과정과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을 들은 참가자들은 직접 사건 현장인 쌍굴다리를 찾아 당시의 참혹했던 순간을 느껴보았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혈육과 이웃이 죽어가는 고통을 견디며 살아남은 당시 10세~13세 생존자들의 증언과 사건 현장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총탄의 흔적은 전쟁의 비인간성과 우리가 당했던 전쟁폭력, 국가폭력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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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우리는 위령탑을 찾아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린이어깨동무 최혜경 사무총장은 “어제 오늘 접한 죽음은 우리가 국가폭력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바라보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평화와 인권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노근리 학살은 함께 기억하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실천할 때 더디지만 역사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라며 평화의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추모 헌화를 한 어린이어깨동무 조선금 이사는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가 선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는 다짐으로 추모의 시간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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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에 걸쳐 진행한 올해의 피스로드는 이번 일정으로 마무리됩니다.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우리 삶 곳곳의 분단과 비평화의 모습을 찾고, 함께 평화의 다짐을 했던 올해의 피스로드 활동보고는 참가자들이 남겨준 삼행시를 공유하며 마무리할까 합니다.  


노근리에 와서 그대의

근황을 물어보고

이유 없는 죽음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짜기 골짜기마다 울음소리가 퍼진다

영혼들의 소리다 우리의 이름을 찾아주시오 

골령골에서 찾은 평화의 기억 소중히 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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