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인터뷰는 소식지 149호 '만나야 평화'에 게재되었습니다.
이 활동을 하는 어른들이 모두 친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성란(도쿄 조선 제5초중급학교 미술 교원)
어린이어깨동무는 분쟁지역 어린이들이 그림이라는 언어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드로잉 호프’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드로잉 호프’는 어깨동무가 2001년부터 시작한 ‘평화그림전’의 씨앗에서 자란 열매이자, 오랜 시간 동안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평화의 씨앗을 키워온 결과입니다. 25년 전, 어깨동무와 그 씨앗을 함께 뿌린 도쿄 조선 제5초중급학교 김성란 선생님을 온라인으로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린이어깨동무 회원들에게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도쿄 조선 제5초중급학교 미술 교원 김성란이라고 합니다. 약 25년 동안 어깨동무 평화그림전과 평화워크숍, 그리고 최근 ‘드로잉 호프’ 등 다양한 활동을 가까이서 협력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향은 경상북도 고령이고, 재일동포 3세입니다. 재일동포 중 분단되지 않은 한반도를 우리 조국으로 생각하며 ‘조선’을 국적으로 생각하는 ‘조선’ 국적(조선적)의 분들이 있고, 한일 수교 이후 한국 국적으로 변경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과 자매들은 모두 한국 국적을 선택했지만 저는 여전히 조선 국적을 유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조선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국적도 조선, 한국, 일본 등 다양하며, 많은 재일 동포들의 고향이 남측이라는 점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린이어깨동무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계기와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1년 10월, 어깨동무가 광화문 시민광장에서 개최한 동아시아 평화그림전에 조선학교 어린이들의 그림을 보냈습니다. 당시 조선학교와 한국과의 교류가 전혀 없던 시기였기 때문에 조선학교 학생들의 그림이 한국에 전시된다는 사실은 큰 의미가 있었어요. 전시 이후 어깨동무는 전시 사진뿐만 아니라, 전시장을 방문한 사람들이 조선학교 친구들의 그림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자세하게 전달해주었습니다. 또한 작품을 출품한 친구들에게 어깨동무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선물로 보내주었는데, 아이들 한 명 한 명 헤아려주는 따뜻한 배려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저는 교류를 사무적인 주고받음으로 생각했었는데, 어깨동무와의 만남을 통해 교류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오가는 일이라는 것을 느꼈고, 이를 통해 신뢰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학교 전교생이 모이는 자리에서 어깨동무 평화그림전을 소개하고, 교장선생님께서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어깨동무가 보내준 선물을 전달해주었습니다. 조선학교 학생들이 한국에 그림을 보내고, 한국으로부터 선물을 받는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학생들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굉장히 기뻐했지요.
2002년 조선학교 어린이들과 한국을 처음 방문하셨는데, 초청받았을 때의 마음과 방문에서 느낀 소감을 나눠주세요.
2002년 6월, 도쿄에서 열린 ‘남북 어린이와 일본 어린이 그림마당’ 행사에서 어깨동무 어린이들이 ‘가보고 싶어’라는 노래를 불러주었어요.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을 울렸고, 남측 어린이들이 북의 어린이들을 생각하면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워크숍을 마친 후, 어깨동무에서 그해 10월 한국에서 열리는 그림전에 우리를 초청했습니다. 당시에는 조선학교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한 선례가 없었고, 남은 시간이 한 달뿐이라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당시 남북 간 분위기도 좋았고, 총련에서도 어깨동무가 북녘 어린이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어깨동무가 그림전을 통해 보여준 따뜻한 배려와 진심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게다가 일본 그림전 실행위원회 대표였던 미키 무츠코 여사(전 일본 수상 부인)와 일본 단체들의 협력 덕분에, 2002년 10월 10일, 마침내 우리들은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1세 동포들의 고향 방문이나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의 방문 사례는 있었지만, 조선학교 교원이나 학생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출발 이틀 전에야 한국 영사관에서 임시여권을 받았으니, 얼마나 긴박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 방문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전에 없던 역사적인 발걸음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어깨동무와 우리가 함께 품었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믿습니다.

그 당시 어깨동무가 진행했던 평화체험활동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어깨동무의 평화통일교육을 직접 보고 느끼는 순간이었죠. 조선학교에서도 평화나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통일을 하나의 큰 희망으로 이야기하며, “우리가 통일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큰 틀에서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깨동무는 전혀 달랐습니다. 통일과 평화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며, 어린이들의 일상과 연결시키는 방식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단순히 지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일상 속에서 통일을 준비하고 평화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어깨동무의 이러한 접근은 저에게 큰 배움이 되었고, 동시에 깊은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조선학교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로 일본에 끌려온 재일동포 1세대 분들은 생계를 꾸리느라 바빠 자녀들에게 우리 말을 가르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를 위해 전국에 국어강습소를 만들어 우리말 교육을 시작한 것이 바로 조선학교의 시작입니다. 일본 정부는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하고 있어서, 우리 학교는 재정적으로 어렵고, 학교 수도 적습니다. 이로 인해 학생들이 1~2시간씩 걸려 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많지요. 조선학교는 우리 말, 우리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며 긍정적인 민족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2년, 북측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했을 때나 북측에서 군사행동이 있을 때, 일본 내 반북 감정이 심화되면서 조선학교와 학생들이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학교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협박이 오거나, 당시 여학생이 교복으로 입고 있던 치마저고리가 칼에 찢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조선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협박을 받는 현실 때문에 조선학교에 보내지 않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 조선학교를 지지하는 일본 사람들이 학교 앞에 응원대를 세워주는 모습에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깨동무와 교류하면서 조선학교 친구들이 특별하고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워크숍에 참여할 때 우리 아이들이 어깨동무 친구들과 일본 어린이들 사이에 통역하면서 이야기를 이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조선학교 어린이들이 남측, 북측, 일본 어린이들 사이에서 평화의 다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워크숍에 참여한 아이들 또한 단순히 그림을 교류하는 것을 넘어, 자신들이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시대를 만들고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자신감도 얻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지요.
지금까지 어깨동무와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활동들을 함께하셨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어깨동무와의 교류를 통해 조선학교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제공해야겠다는 생각과 우리도 주체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 2003년부터 조선학교 학생들과 함께 평양을 방문해서 북녘 친구들과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어른들만 방북했지만, 조선학교 어린이들이 방문하면서 북녘 어린이들도 매우 기뻐했고 그림전 또한 훨씬 더 풍성해졌습니다. 2005년부터는 조선학교가 주도적으로 일본 전역을 순회하며 ‘학생미술전람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남북 어린이들과의 그림 교류 경험을 더 많은 조선학교 학생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전시를 시작했습니다. 2005년 기획전시는 등신대 크기의 몸그림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남북의 어린이가 손을 잡듯 나란히 서 있는 이 전시를 보고, 관람자들은 마치 통일이 된 것 같다고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그림들은 2014년부터 평양에서도 전시했습니다. 류재수 선생님이 그려주신 ‘평화의 나무’ 공동화를 북녘 릉라소학교에 가져가 “이 그림은 남측 류재수 선생님이 그린 것이고, 남측, 일본, 연길 아이들이 평화의 나무 위에 그림을 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북녘 아이들과 마지막을 완성했지요. 북녘에서 어깨동무와의 활동을 설명하고, 북녘 어린이들과 함께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큰 기쁨이었습니다.
2019년까지 해마다 평양 릉라소학교에서 동아시아 지역 어린이들의 합동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어깨동무와의 그림 교류 성과가 담겨진 작품들을 전시할 수 있어서 감개무량했습니다.

조선학교에서는 어린이어깨동무는 어떤 단체로 알려져 있나요?
조선학교 학생들과 교원의 첫 한국 방문은 조선신보에 매우 자세하게 소개되었습니다. 처음 요청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지면이 할애되었는데, 이는 조선학교와 어깨동무와의 만남이 얼마나 큰 감동을 주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재일동포나 조선학교와 교류를 하는 시민단체들이 많이 생겼지만, 그 시작은 단연 어깨동무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어깨동무와 다른 단체와의 가장 큰 차이는 ‘어린이만을 위한 교류’라는 점입니다. 또 하나 높게 평가할 점은 지속성입니다. 지금도 이벤트성으로 교류를 진행하는 단체들이 많지만, 어깨동무와 조선학교와의 교류는 어느덧 25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정치적 어려움이 있어도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정말 자랑스럽고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어깨동무에 대한 신뢰는 조선학교뿐만 아니라 북측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 남북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제가 평양에서 북측 파트너와 이야기 나누던 중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남조선 민간단체가 조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지만, 만약 민간단체가 들어오게 된다면 최우선으로 들어오게 될 단체가 어깨동무일 것입니다. 어깨동무는 우리가 어려울 때 진심으로 배려해주고, 도와준 단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기분 좋았는지 몰라요.
조선학교를 지원해주는 여러 단체들이 있지만, 어깨동무는 그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어깨동무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린이어깨동무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깨동무와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결국 ‘어린이들을 위한 어른들의 한결같은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저에게 “왜 이렇게 오랫동안 그림 교류를 합니까?”라고 종종 묻는데, 저는 “이 활동을 하는 어른들이 모두 친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합니다. 어린이들에게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은 사람들이 이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었고, 그 응원을 받은 저희 같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 일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어려운 일들이 많았고, 앞으로도 그런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함께라면 그 무엇도 해낼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깨동무 회원 여러분! 여러분들이 어깨동무를 응원하시는 만큼, 조선학교에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이 인터뷰는 소식지 149호 '만나야 평화'에 게재되었습니다.
이 활동을 하는 어른들이 모두 친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성란(도쿄 조선 제5초중급학교 미술 교원)
어린이어깨동무는 분쟁지역 어린이들이 그림이라는 언어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드로잉 호프’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드로잉 호프’는 어깨동무가 2001년부터 시작한 ‘평화그림전’의 씨앗에서 자란 열매이자, 오랜 시간 동안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평화의 씨앗을 키워온 결과입니다. 25년 전, 어깨동무와 그 씨앗을 함께 뿌린 도쿄 조선 제5초중급학교 김성란 선생님을 온라인으로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린이어깨동무 회원들에게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도쿄 조선 제5초중급학교 미술 교원 김성란이라고 합니다. 약 25년 동안 어깨동무 평화그림전과 평화워크숍, 그리고 최근 ‘드로잉 호프’ 등 다양한 활동을 가까이서 협력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향은 경상북도 고령이고, 재일동포 3세입니다. 재일동포 중 분단되지 않은 한반도를 우리 조국으로 생각하며 ‘조선’을 국적으로 생각하는 ‘조선’ 국적(조선적)의 분들이 있고, 한일 수교 이후 한국 국적으로 변경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과 자매들은 모두 한국 국적을 선택했지만 저는 여전히 조선 국적을 유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조선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국적도 조선, 한국, 일본 등 다양하며, 많은 재일 동포들의 고향이 남측이라는 점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린이어깨동무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계기와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1년 10월, 어깨동무가 광화문 시민광장에서 개최한 동아시아 평화그림전에 조선학교 어린이들의 그림을 보냈습니다. 당시 조선학교와 한국과의 교류가 전혀 없던 시기였기 때문에 조선학교 학생들의 그림이 한국에 전시된다는 사실은 큰 의미가 있었어요. 전시 이후 어깨동무는 전시 사진뿐만 아니라, 전시장을 방문한 사람들이 조선학교 친구들의 그림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자세하게 전달해주었습니다. 또한 작품을 출품한 친구들에게 어깨동무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선물로 보내주었는데, 아이들 한 명 한 명 헤아려주는 따뜻한 배려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저는 교류를 사무적인 주고받음으로 생각했었는데, 어깨동무와의 만남을 통해 교류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오가는 일이라는 것을 느꼈고, 이를 통해 신뢰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학교 전교생이 모이는 자리에서 어깨동무 평화그림전을 소개하고, 교장선생님께서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어깨동무가 보내준 선물을 전달해주었습니다. 조선학교 학생들이 한국에 그림을 보내고, 한국으로부터 선물을 받는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학생들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굉장히 기뻐했지요.
2002년 조선학교 어린이들과 한국을 처음 방문하셨는데, 초청받았을 때의 마음과 방문에서 느낀 소감을 나눠주세요.
2002년 6월, 도쿄에서 열린 ‘남북 어린이와 일본 어린이 그림마당’ 행사에서 어깨동무 어린이들이 ‘가보고 싶어’라는 노래를 불러주었어요.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을 울렸고, 남측 어린이들이 북의 어린이들을 생각하면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워크숍을 마친 후, 어깨동무에서 그해 10월 한국에서 열리는 그림전에 우리를 초청했습니다. 당시에는 조선학교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한 선례가 없었고, 남은 시간이 한 달뿐이라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당시 남북 간 분위기도 좋았고, 총련에서도 어깨동무가 북녘 어린이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어깨동무가 그림전을 통해 보여준 따뜻한 배려와 진심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게다가 일본 그림전 실행위원회 대표였던 미키 무츠코 여사(전 일본 수상 부인)와 일본 단체들의 협력 덕분에, 2002년 10월 10일, 마침내 우리들은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1세 동포들의 고향 방문이나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의 방문 사례는 있었지만, 조선학교 교원이나 학생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출발 이틀 전에야 한국 영사관에서 임시여권을 받았으니, 얼마나 긴박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 방문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전에 없던 역사적인 발걸음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어깨동무와 우리가 함께 품었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믿습니다.
그 당시 어깨동무가 진행했던 평화체험활동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어깨동무의 평화통일교육을 직접 보고 느끼는 순간이었죠. 조선학교에서도 평화나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통일을 하나의 큰 희망으로 이야기하며, “우리가 통일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큰 틀에서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깨동무는 전혀 달랐습니다. 통일과 평화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며, 어린이들의 일상과 연결시키는 방식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단순히 지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일상 속에서 통일을 준비하고 평화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어깨동무의 이러한 접근은 저에게 큰 배움이 되었고, 동시에 깊은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조선학교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로 일본에 끌려온 재일동포 1세대 분들은 생계를 꾸리느라 바빠 자녀들에게 우리 말을 가르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를 위해 전국에 국어강습소를 만들어 우리말 교육을 시작한 것이 바로 조선학교의 시작입니다. 일본 정부는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하고 있어서, 우리 학교는 재정적으로 어렵고, 학교 수도 적습니다. 이로 인해 학생들이 1~2시간씩 걸려 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많지요. 조선학교는 우리 말, 우리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며 긍정적인 민족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2년, 북측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했을 때나 북측에서 군사행동이 있을 때, 일본 내 반북 감정이 심화되면서 조선학교와 학생들이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학교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협박이 오거나, 당시 여학생이 교복으로 입고 있던 치마저고리가 칼에 찢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조선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협박을 받는 현실 때문에 조선학교에 보내지 않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 조선학교를 지지하는 일본 사람들이 학교 앞에 응원대를 세워주는 모습에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깨동무와 교류하면서 조선학교 친구들이 특별하고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워크숍에 참여할 때 우리 아이들이 어깨동무 친구들과 일본 어린이들 사이에 통역하면서 이야기를 이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조선학교 어린이들이 남측, 북측, 일본 어린이들 사이에서 평화의 다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워크숍에 참여한 아이들 또한 단순히 그림을 교류하는 것을 넘어, 자신들이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시대를 만들고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자신감도 얻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지요.
지금까지 어깨동무와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활동들을 함께하셨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어깨동무와의 교류를 통해 조선학교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제공해야겠다는 생각과 우리도 주체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 2003년부터 조선학교 학생들과 함께 평양을 방문해서 북녘 친구들과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어른들만 방북했지만, 조선학교 어린이들이 방문하면서 북녘 어린이들도 매우 기뻐했고 그림전 또한 훨씬 더 풍성해졌습니다. 2005년부터는 조선학교가 주도적으로 일본 전역을 순회하며 ‘학생미술전람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남북 어린이들과의 그림 교류 경험을 더 많은 조선학교 학생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전시를 시작했습니다. 2005년 기획전시는 등신대 크기의 몸그림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남북의 어린이가 손을 잡듯 나란히 서 있는 이 전시를 보고, 관람자들은 마치 통일이 된 것 같다고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그림들은 2014년부터 평양에서도 전시했습니다. 류재수 선생님이 그려주신 ‘평화의 나무’ 공동화를 북녘 릉라소학교에 가져가 “이 그림은 남측 류재수 선생님이 그린 것이고, 남측, 일본, 연길 아이들이 평화의 나무 위에 그림을 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북녘 아이들과 마지막을 완성했지요. 북녘에서 어깨동무와의 활동을 설명하고, 북녘 어린이들과 함께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큰 기쁨이었습니다.
2019년까지 해마다 평양 릉라소학교에서 동아시아 지역 어린이들의 합동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어깨동무와의 그림 교류 성과가 담겨진 작품들을 전시할 수 있어서 감개무량했습니다.
조선학교에서는 어린이어깨동무는 어떤 단체로 알려져 있나요?
조선학교 학생들과 교원의 첫 한국 방문은 조선신보에 매우 자세하게 소개되었습니다. 처음 요청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지면이 할애되었는데, 이는 조선학교와 어깨동무와의 만남이 얼마나 큰 감동을 주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재일동포나 조선학교와 교류를 하는 시민단체들이 많이 생겼지만, 그 시작은 단연 어깨동무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어깨동무와 다른 단체와의 가장 큰 차이는 ‘어린이만을 위한 교류’라는 점입니다. 또 하나 높게 평가할 점은 지속성입니다. 지금도 이벤트성으로 교류를 진행하는 단체들이 많지만, 어깨동무와 조선학교와의 교류는 어느덧 25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정치적 어려움이 있어도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정말 자랑스럽고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어깨동무에 대한 신뢰는 조선학교뿐만 아니라 북측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 남북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제가 평양에서 북측 파트너와 이야기 나누던 중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남조선 민간단체가 조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지만, 만약 민간단체가 들어오게 된다면 최우선으로 들어오게 될 단체가 어깨동무일 것입니다. 어깨동무는 우리가 어려울 때 진심으로 배려해주고, 도와준 단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기분 좋았는지 몰라요.
조선학교를 지원해주는 여러 단체들이 있지만, 어깨동무는 그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어깨동무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린이어깨동무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깨동무와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결국 ‘어린이들을 위한 어른들의 한결같은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저에게 “왜 이렇게 오랫동안 그림 교류를 합니까?”라고 종종 묻는데, 저는 “이 활동을 하는 어른들이 모두 친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합니다. 어린이들에게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은 사람들이 이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었고, 그 응원을 받은 저희 같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 일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어려운 일들이 많았고, 앞으로도 그런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함께라면 그 무엇도 해낼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깨동무 회원 여러분! 여러분들이 어깨동무를 응원하시는 만큼, 조선학교에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