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헤이그에서 평화를 말하다
- 헤이그 청년 평화 서밋 후기-
김지우, 박희정, 선주희, 이서현 (어린이어깨동무 청년회원)

어린이어깨동무 청년 회원들이 지난 6월 17일부터 19일까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청년 평화 서밋에 참가자로 함께했습니다. 이번 청년 평화 서밋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250호의 10주년을 맞이하여, ‘청년, 평화, 안보 (YPS - Youth, Peace, Security)를 주제로 61개국 150여명의 청년들이 모여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어린이어깨동무도 파트너 단체로 참여하여, 청년 회원들이 직접 전시와 부스, 워크숍을 진행하고 청년 평화 선언문을 함께 작성했습니다. 청년 회원들의 후기를 재구성하여 현장을 전합니다.
청년, 평화를 만드는 세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5년 결의안 2250호를 통해 '청년'을 평화를 만들어갈 세대로 명시했다. 처음에는 이 결의안이 '청년'을 주체로 삼은 이유가 자유와 열정을 가진 세대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다소 낭만적인 생각을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 훨씬 절박하고 실재적인 이유였다. 분쟁 상황에서 가장 먼저 무장 세력에 동원되거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상당수가 청년이라는 사실, 즉 청년이 평화의 부재를 가장 먼저 감당하는 세대였기 때문이었다. 이 결의안은 누군가 청년에게 선뜻 내어준 자리가 아니었다. 수만 명의 청년들이 수년에 걸쳐 목소리를 낸 끝에, 스스로 만들어낸 자리였다.
함께 간 한국 청년들과도 끊임없이 고민했던 것이 바로 ‘청년’의 역할이었다. 개회식에서 UN의 EU 청년 대표는 미래의 세계를 만들어 갈 청년들이 직접 평화를 만들어야 하며, 청년은 어른들과 비교해서 더 많은 창의력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 말에 의구심을 품었다. 내가 살아온 곳에서는 청년 세대가 새로운 갈등을 조장하고, 평화를 해하며 창의력을 갖기보다는 어른의 말과 기존의 방식에 불만을 표출할 뿐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선 이 프로그램의 시작과 존재에 있어서 청년 세대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평화’라는 추상적일 수도 있는 목표를 위하여 갈등을 인식하고, 바꾸고자 하는 의지로 모인 청년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수많은 '평화'가 부딪히는 현장에서 깊어지는 고민
서밋은 사흘간 '참여', '예방', '보호', '협력', '화해와 재통합'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워크숍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각 워크숍은 그 주제와 관련해 활동하는 청년 단체들이 직접 자신의 활동을 소개하고 진행하는 형식이었다. 워크숍에 참여하며 여러 단체가 '평화'라는 가치를 위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각 단체들은 전쟁의 한복판에서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이념의 갈등이 생활에 스며든 지역에서 삶을 바꾸어 내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워크숍에서는 각자가 처한 자리에서 모두를 논의의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애쓴 경험과 방법들이 오갔다.
행사의 최종 목표는 참가자들이 다 함께 NATO, UN, EU 등 국제기구에 제출할 청년 평화 선언문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청년들이 그동안 느껴왔던 것과 세션을 통해 얻은 바를 토대로 평화에 대한 구체적 구축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제출하는 것이다. 내가 참여한 세션의 내용과 함께한 참가자들과 대화를 통해서 팔레스타인, 내전, 인터넷 속 평화를 지키는 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실 모두가 추구하는 평화 혹은 그걸 만들어가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청년들끼리도 서로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순간이 분명 존재했다.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개인을 넘어 각 국가가 처한 맥락과 역사에 따라 평화를 상상하는 방식의 폭이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청년'이라는 범주 안에는 젠더, 국적, 인종, 종교, 취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결이 담겨 있었다. 세대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였지만 실은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평화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서밋의 중반에 접어들며 고민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정치적인 외교의 언어 옆, 일상적인 어린이의 언어
헤이그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국제 평화와 정의의 도시'라 칭해왔다. 평화와 분쟁이 공식적으로 협상되고 판결되며 기록되는, 국제기구가 즐비한 헤이그에서 청년 평화 서밋 워크숍 중 하나로 어깨동무가 드로잉 호프를 전시하는 것인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늘 평화 프로세스란 외교관, 정치인, 군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들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헤이그에서 어린이들의 전시를 한다는 것은, 가장 '제도적인' 것 바로 옆에 가장 '일상적인' 것을 놓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 모습은 이번 청년 평화 서밋의 전제였을지도 모른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들로 가득 찬 도시에서조차, 청년들에게는 여전히 발언권이나 참여할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번 정상회의는 청년들이 기존 기관의 부속물이 아니라, '누가 평화를 정의하는가'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주체로서 자신만의 언어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우리가 준비한 드로잉 호프 전시와 워크숍이 그 질문에 특별한 울림을 더해주었다고 느낀다. 참가자들에게 전시된 그림 속 어린이들에게 답장을 써달라고 했다. 참가자들이 한 장의 그림 앞에 생각보다 훨씬 오래 머무는 모습을 보며, 그림들이 우리가 쌓아 올린 장벽을 넘어 얼마나 직관적으로 다가가는지 실감했다.
어린이들은 메시지에서 "너랑 축구하고 싶어", "언젠가 만나고 싶어" 같은 이야기를 썼다. 어린이들은 어른들도 물려받았고 또 물려주는 사회적 분열에 아직 물들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그림은 그러한 장벽과 갈등 너머의 세상, 즉 건너편 사람과 그저 같이 놀고, 만나고, 알고 싶다는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 그림에서 우리들은 어린이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웠다. 그림은 갈등을 만들던 비인간화와 기호화에 균열을 내고 있었다. 청년들도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미래의 평화활동가'가 아니라, 이미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그 상상 자체가 하나의 희망이었다.

분단국가 청년으로서 던지는 질문
한 워크숍에서 이 다양함의 간극이 내적인 갈등으로 번졌다. 유럽 통합과 연방주의를 지향하는 한 단체가 초국가적(transnational)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워크숍을 진행할 때였다. 유럽이라는 대륙의 상황을 당연하게 전제한 그 자리에는, 유럽연합에 속하지 않은 국가에서 온 참가자가 여럿 있었다. 국가 간 연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유럽연합이라는 정치적 조건을 전제로 한 협력 방식이 모든 지역에서 가능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 단체가 전제하고 있는 관점과 워크숍의 구성 방식 모두에 의문이 들었다. 특히 분단국가라는 고유한 역사 위에서 활동해 온 어깨동무 청년회원으로서, 인근 국경을 넘나들어야 가능해지는 보편적 연대라는 개념은 나에게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유럽식 연방주의의 틀을 그대로 가져와 평화의 답안처럼 제시하는 방식은, 분단이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평화를 고민해온 우리나라의 경험과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워크숍이 끝난 후 우리 팀은 각자가 느낀 당혹스러움과 의문을 공유하고, 그 워크숍을 진행한 단체뿐만 아니라 이 서밋의 주요 활동가들과도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 다른 위치에서 드러나는 딜레마를 함께 짚어보았다.
이번 서밋은 '청년'으로 묶여 있었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그렇다면 다양성이 공존하는 평화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 평화는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여전히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평화는 하나의 모델을 다른 맥락에 그대로 옮겨 붙인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개회식에서 울려 퍼진 'Be yourself'라는 메세지는 단순한 환대의 인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오랫동안 만들어온 지식과 언어를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기보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그것을 끝까지 의심하고 질문하라는 요청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청년이란 아직 그 질서에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았기에, 그리고 아직 모르는 것이 많기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그 무지를 두려워하지 않은 채 끝까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 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함께하는 평화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청년, 헤이그에서 평화를 말하다
- 헤이그 청년 평화 서밋 후기-
김지우, 박희정, 선주희, 이서현 (어린이어깨동무 청년회원)
어린이어깨동무 청년 회원들이 지난 6월 17일부터 19일까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청년 평화 서밋에 참가자로 함께했습니다. 이번 청년 평화 서밋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250호의 10주년을 맞이하여, ‘청년, 평화, 안보 (YPS - Youth, Peace, Security)를 주제로 61개국 150여명의 청년들이 모여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어린이어깨동무도 파트너 단체로 참여하여, 청년 회원들이 직접 전시와 부스, 워크숍을 진행하고 청년 평화 선언문을 함께 작성했습니다. 청년 회원들의 후기를 재구성하여 현장을 전합니다.
청년, 평화를 만드는 세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5년 결의안 2250호를 통해 '청년'을 평화를 만들어갈 세대로 명시했다. 처음에는 이 결의안이 '청년'을 주체로 삼은 이유가 자유와 열정을 가진 세대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다소 낭만적인 생각을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 훨씬 절박하고 실재적인 이유였다. 분쟁 상황에서 가장 먼저 무장 세력에 동원되거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상당수가 청년이라는 사실, 즉 청년이 평화의 부재를 가장 먼저 감당하는 세대였기 때문이었다. 이 결의안은 누군가 청년에게 선뜻 내어준 자리가 아니었다. 수만 명의 청년들이 수년에 걸쳐 목소리를 낸 끝에, 스스로 만들어낸 자리였다.
함께 간 한국 청년들과도 끊임없이 고민했던 것이 바로 ‘청년’의 역할이었다. 개회식에서 UN의 EU 청년 대표는 미래의 세계를 만들어 갈 청년들이 직접 평화를 만들어야 하며, 청년은 어른들과 비교해서 더 많은 창의력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 말에 의구심을 품었다. 내가 살아온 곳에서는 청년 세대가 새로운 갈등을 조장하고, 평화를 해하며 창의력을 갖기보다는 어른의 말과 기존의 방식에 불만을 표출할 뿐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선 이 프로그램의 시작과 존재에 있어서 청년 세대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평화’라는 추상적일 수도 있는 목표를 위하여 갈등을 인식하고, 바꾸고자 하는 의지로 모인 청년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수많은 '평화'가 부딪히는 현장에서 깊어지는 고민
서밋은 사흘간 '참여', '예방', '보호', '협력', '화해와 재통합'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워크숍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각 워크숍은 그 주제와 관련해 활동하는 청년 단체들이 직접 자신의 활동을 소개하고 진행하는 형식이었다. 워크숍에 참여하며 여러 단체가 '평화'라는 가치를 위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각 단체들은 전쟁의 한복판에서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이념의 갈등이 생활에 스며든 지역에서 삶을 바꾸어 내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워크숍에서는 각자가 처한 자리에서 모두를 논의의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애쓴 경험과 방법들이 오갔다.
행사의 최종 목표는 참가자들이 다 함께 NATO, UN, EU 등 국제기구에 제출할 청년 평화 선언문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청년들이 그동안 느껴왔던 것과 세션을 통해 얻은 바를 토대로 평화에 대한 구체적 구축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제출하는 것이다. 내가 참여한 세션의 내용과 함께한 참가자들과 대화를 통해서 팔레스타인, 내전, 인터넷 속 평화를 지키는 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실 모두가 추구하는 평화 혹은 그걸 만들어가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청년들끼리도 서로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순간이 분명 존재했다.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개인을 넘어 각 국가가 처한 맥락과 역사에 따라 평화를 상상하는 방식의 폭이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청년'이라는 범주 안에는 젠더, 국적, 인종, 종교, 취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결이 담겨 있었다. 세대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였지만 실은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평화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서밋의 중반에 접어들며 고민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정치적인 외교의 언어 옆, 일상적인 어린이의 언어
헤이그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국제 평화와 정의의 도시'라 칭해왔다. 평화와 분쟁이 공식적으로 협상되고 판결되며 기록되는, 국제기구가 즐비한 헤이그에서 청년 평화 서밋 워크숍 중 하나로 어깨동무가 드로잉 호프를 전시하는 것인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늘 평화 프로세스란 외교관, 정치인, 군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들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헤이그에서 어린이들의 전시를 한다는 것은, 가장 '제도적인' 것 바로 옆에 가장 '일상적인' 것을 놓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 모습은 이번 청년 평화 서밋의 전제였을지도 모른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들로 가득 찬 도시에서조차, 청년들에게는 여전히 발언권이나 참여할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번 정상회의는 청년들이 기존 기관의 부속물이 아니라, '누가 평화를 정의하는가'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주체로서 자신만의 언어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우리가 준비한 드로잉 호프 전시와 워크숍이 그 질문에 특별한 울림을 더해주었다고 느낀다. 참가자들에게 전시된 그림 속 어린이들에게 답장을 써달라고 했다. 참가자들이 한 장의 그림 앞에 생각보다 훨씬 오래 머무는 모습을 보며, 그림들이 우리가 쌓아 올린 장벽을 넘어 얼마나 직관적으로 다가가는지 실감했다.
어린이들은 메시지에서 "너랑 축구하고 싶어", "언젠가 만나고 싶어" 같은 이야기를 썼다. 어린이들은 어른들도 물려받았고 또 물려주는 사회적 분열에 아직 물들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그림은 그러한 장벽과 갈등 너머의 세상, 즉 건너편 사람과 그저 같이 놀고, 만나고, 알고 싶다는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 그림에서 우리들은 어린이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웠다. 그림은 갈등을 만들던 비인간화와 기호화에 균열을 내고 있었다. 청년들도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미래의 평화활동가'가 아니라, 이미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그 상상 자체가 하나의 희망이었다.
분단국가 청년으로서 던지는 질문
한 워크숍에서 이 다양함의 간극이 내적인 갈등으로 번졌다. 유럽 통합과 연방주의를 지향하는 한 단체가 초국가적(transnational)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워크숍을 진행할 때였다. 유럽이라는 대륙의 상황을 당연하게 전제한 그 자리에는, 유럽연합에 속하지 않은 국가에서 온 참가자가 여럿 있었다. 국가 간 연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유럽연합이라는 정치적 조건을 전제로 한 협력 방식이 모든 지역에서 가능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 단체가 전제하고 있는 관점과 워크숍의 구성 방식 모두에 의문이 들었다. 특히 분단국가라는 고유한 역사 위에서 활동해 온 어깨동무 청년회원으로서, 인근 국경을 넘나들어야 가능해지는 보편적 연대라는 개념은 나에게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유럽식 연방주의의 틀을 그대로 가져와 평화의 답안처럼 제시하는 방식은, 분단이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평화를 고민해온 우리나라의 경험과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워크숍이 끝난 후 우리 팀은 각자가 느낀 당혹스러움과 의문을 공유하고, 그 워크숍을 진행한 단체뿐만 아니라 이 서밋의 주요 활동가들과도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 다른 위치에서 드러나는 딜레마를 함께 짚어보았다.
이번 서밋은 '청년'으로 묶여 있었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그렇다면 다양성이 공존하는 평화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 평화는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여전히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평화는 하나의 모델을 다른 맥락에 그대로 옮겨 붙인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개회식에서 울려 퍼진 'Be yourself'라는 메세지는 단순한 환대의 인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오랫동안 만들어온 지식과 언어를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기보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그것을 끝까지 의심하고 질문하라는 요청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청년이란 아직 그 질서에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았기에, 그리고 아직 모르는 것이 많기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그 무지를 두려워하지 않은 채 끝까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 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함께하는 평화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