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교육함께 희망을 이야기하고 질문하다 - 2026 아일랜드섬 평화연수 활동보고 -

함께 희망을 이야기하고 질문하다

- 2026 아일랜드섬 평화연수 활동보고 -


김지안, 김지우, 서준희, 홍현아 (어린이어깨동무 청년회원)


지난 7월 7일부터 15일까지 어린이어깨동무는 아일랜드섬 평화연수를 진행했습니다. 분쟁과 갈등을 넘어 평화를 일상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 온 아일랜드섬의 평화 현장을 방문하고, 희망 가꾸기 배움의 여정 Nurturing Hope Learning Journey에 참여해, 코리밀라 공동체를 경험하고, 분쟁과 갈등을 겪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연수에 참여한 어깨동무 회원들의 소감문을 재구성하여, 평화 여정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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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


주변에서 아일랜드섬을 다녀온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점점 많아졌다. 각자의 포인트는 조금씩 달랐지만, 평화에 대해서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공유해주었다. 심포지엄에서, 청년캠프에서 북아일랜드 활동가를 많이 만나왔지만, 듣기만 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편적인 낯선 이름들 속에서 길을 헤매기 일쑤였다. 한번의 여정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텍스트 속 길을 찾는 이정표는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영국 파운드화가 2000원이 넘는 엄청난 시절에, 머나먼 길을 떠나기로 했다. 어깨동무의 친절한 한국어 설명과 발전하는 AI가 도움이 될 것이라 믿으며...


이번 연수 기간 중에는 보인전투기념일(7월 12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모닥불을 피우고, 행진하며 17세기 말 잉글랜드의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가 몇백년이 지난 지금도 북아일랜드에서 갈등을 재생산하고 있다. 나무팔렛트를 촘촘하게 쌓아올려 30m가 넘는 '본파이어(bonfire)'를 단순하게 모닥불이라는 말로 직역할 수 있을까. 강원도보다 작은 북아일랜드 전역에는 200개가 넘는 본파이어가 만들어진다. '우리'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그들'의 지역을 침범해서 행진하고, 남녀노소 손을 보태어 본파이어를 쌓는다. 그 끝에는 아일랜드 국기와 같은 '그들'의 상징을 함께 불태운다.


2일차 아침, 호텔 로비에서 바깥을 보는데 본파이어가 보였다. 9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애들이 팔렛트를 쌓기 위해 본파이어를 아슬아슬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저 본파이어의 의미를 알까?, 저 존재만으로 누군가는 공포감을 느끼거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증오와 갈등은 학습을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문화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본파이어를 통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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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벨파스트 시청과 린넨홀 도서관을 방문했다. 린넨홀도서관에는 분쟁 시기 선전 포스터 아카이브 작업을 전시하고 있다. 그중 영국계 얼스터기를 나치에 비유한 포스터는 충격적이었다. 서로를 분리하고, 미워하는 포스터들 사이로 화합과 평화를 외치는 포스터들이 보였다. 한편에는 통합학교에 대한 전시가 있었다. 아침에 봤던 9살 아이들과 어깨동무에서 교류했던 알시티 친구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적이 아닌 친구로서 서로를 소개할 수 있다면 아침에 본 친구들은 본파이어를 쌓는 것이 아니라 알시티 친구들처럼 가톨릭계 친구들과 섞여 놀았을 것이다.


침묵도, 노래도, 춤도 다 괜찮았다


몇 시간을 달려 코리밀라에 도착했다. 반가운 인사와 코리밀라의 편안한 분위기와 따뜻한 환대 덕분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이번 코리밀라에서의 여정은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첫 세션이었던 저녁세션은 자신을 소개하는 세션이었다. 이름과 나이를 비롯해 세 가지 포인트로 정체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유롭게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야기할 것이 없다면 긴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코리밀라 프로그램 동안 이 시간이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다. 한국에서는 침묵의 시간이 어색하고, 꼭 끊어야 할 것처럼 느껴졌지만, 이곳에서는 생각을 정리하고, 용기를 주는 시간이었다. 동시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함께한 사람들은 북아일랜드 분쟁 시기 속 빛을 만들어낸 시민들, 지금의 반이민 정서를 고민하는 히스패닉계 미국 대학생, 갈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남아공 활동가, 전쟁으로 제3국으로 떠난 우크라이나 대학생 등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었다. 다양한 배경의 참가자들과 이야기하는 것 자체로도 많은 배움이 있었다. 코리밀라에 있으며 여러 세대와 의견을 공유하는 색다른 경험을 했으며 다양한 모델의 사례와 삶의 경험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좋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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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평화에 관해 얘기하고, 삶의 고민을 공유하며 참가자들과 점차 가까워졌다. 오후 자유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밸리캐슬에 가거나, 풀밭에서 축구를 하고 담소를 나눴다. 코리밀라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머물 수 있고, 풍경과 공간이 저절로 평화로운 마음을 갖게 했다. 세션과 세션 사이에는 차를 마시며 '교류'하는 시간이 매일 있었는데, 영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표현은 몸짓으로 채워가며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코리밀라 연수는 툭 잘라 설명 가능한 단면의 활동이 아닌, 머무는 것 자체로 평화를 경험하고 과정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활자를 넘어 생생한 이야기와 질문을 나누는 사이 며칠이 흘러갔다. 평화를 위해서 활동하고 싶다는 청년의 말에, 북아일랜드 분쟁을 겪은 노년의 참여자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하다 보니 평화운동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이라고 담담히 답했다. 세대 간의 대화는 가르침이라기보다 먼저 길을 걸어간 이가 내어주는 경험담이었다.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은 내가 품고 있던 질문과 갈등, 희망에 모든 사람이 함께 머물러 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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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마지막 밤을 잊지 못한다. 그림 같은 해안가, 조그만 모닥불에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누군가 꺼낸 기타 소리에 맞춰 모두가 노래를 부르고 마시멜로우를 구웠다. 며칠 전 배운 아프리카 장단을 함께 연주하자며 주름 가득한 손이 사람들을 이끌었고, 순식간에 근사한 음악대가 만들어졌다. 왈츠부터 팝송까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나이에 상관없이 자정까지 춤을 췄다. 나이를 잊고 함께 어우러지던 그 춤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마법이었을까. 칠십이 넘어서도 저렇게 사랑스럽게 춤출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나이가 들어서도 순수함과 어린이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모닥불 앞에서 우리 청년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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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아니라 더 많은 질문으로


이번 연수를 통해 내가 경험한 '함께'의 범위는 한 공동체나 한 나라에만 머물지 않았다. 아일랜드의 이야기는 한국의 미래를 상상하게 했고, 남아공과 시리아, 우크라이나의 이야기는 또 다른 질문을 던져 주었다.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경험이 한 공간에서 만나면서 각자의 갈등을 더 넓은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한 장소의 이야기가 다른 장소를 바라보는 거울이 되는 경험이었다. 이번 Nurturing Hope Learning Journey는 나에게 명확한 답을 알려준 연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가지고 돌아오게 했다. 우리는 어떤 평화를 준비하고 있는가? 정치적 평화 이후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서로 다른 기억과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다른 지역의 평화와 갈등의 경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또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순간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평화를 연구하는 나에게 좋은 배움은 반드시 정답을 얻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을 만나고,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 역시 중요한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연수는 나에게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보고서 몇 페이지로만 알던 갈등과, 그 갈등을 직접 겪은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만난 갈등은 달랐다. 전시와 영상, 거리와 공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결될 때 비로소 역사가 사람의 삶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한국, 남아공, 시리아, 우크라이나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화라는 개념은 한 지역의 경험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도 다시 느꼈다.


평화는 어느 날 완성되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조금씩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희망은 그 과정에서 우리가 현실을 외면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질문하면서도, 그럼에도 함께 다음을 만들어 가기로 선택하는 것. 지금의 나에게 Nurturing Hope는 희망을 함께 만들고, 함께 돌보고, 함께 질문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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