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화[피스로드 2강] 전태일로드, 전태일과 함께 걷는 퇴근길 13km

전태일로드, 전태일과 함께 걷는 퇴근길 13km


5월 11일 토요일, 전태일 열사의 동상이 있는 평화시장 앞 버들다리에 오늘의 길동무들이 하나, 둘 모입니다. 평소 피스로드와 달리 조금은 비장한 표정 사이사이로 기대감이 묻어납니다. 전태일 열사의 퇴근길 13.7km를 그대로 따라 걷는 이날의 일정이 설렘과 걱정을 함께 불러온 것 같아 보였습니다. 


노동자 전태일의 삶터 평화시장 

오늘은 노동자 전태일이 일하고, 분노하고, 사람들과 힘을 모아 싸우고, 좌절하고, 그리고 산화한 평화시장에서 첫 걸음을 뗍니다. 아이러니하게 그가 생을 마감한 곳에서 우리는 출발합니다. 피스로드 2강은 우리 사회 노동운동사 연구와 역사여행의 권위자 역사학연구소 박준성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길을 떠나기 전, 박준성 선생님은 당시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전태일이라는 젊은 청년의 삶에 대해 나누어주시며, 특히 오늘 걷게 될 평화시장부터 쌍문동 집터까지 13.7km 퇴근길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함께 하지 못한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태일평전』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그 당시만 해도 도봉산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서 일이 끝나고 밤늦게 도봉산 집까지 가려면, 미아리종점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거기서 내려 한 시간 남짓 걸어야만 했다. 때때로 그는 점심을 굶고 있는 시다들에게 버스값을 털어서 1원 짜리 풀빵을 사주고 청계천 6가부터 도봉산까지 두세 시간을 걸어가기도 했다.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은 주린 창자를 안고 온종일 시달린 몸으로 다리를 휘청거리며 미아리까지 걸어가면 밤 12시 통금시간이 되어 야경꾼에게 붙잡혀 파출소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다시 도봉산까지 걸어서 집에 당도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사이에 파출소 순경들도 사정을 알고 그냥 통과시켜, 밤 한 시나 두 시가 지나 집에 돌아오는 일이 버릇처럼 되었는데, 이것은 그 뒤 그가 죽을 때까지 3, 4년 동안 계속되었다. 태일이 처음 미아리파출소에서 밤을 새우던 날, 그의 어머니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어머니가 회고하는 바로는 이러하다. (중략)

 "오다 파출소에서 자고 왔어요. 어머니가 나 집 나올 때 차비 30원을 주잖아요. 시다들이 밤잠을 제대로 못 자서 꾸벅꾸벅 졸고, 일은 해야 하는데 점심까지 쫄쫄 굶길래 보다 못해 그 돈으로 풀빵 30개를 사서 여섯 사람한테 나눠주었더니 한 시간 반쯤은 견디고 일해요. 그래서 집에 올 때 걸어왔더니 오다가 시간이 늦어서 파출소에 붙잡혔어요.“

(『전태일평전』 120~121쪽)


길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전태일 열사의 분신자리를 돌아보고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 즈음... 분명 오후 늦게부터 적게 온다던 비는 몸으로 빗줄기의 강도를 느낄 수 있을 만큼 투둑투둑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60년대 노동자들의 삶을 만나다 : 진고개, 수도학원

‘퇴근길’에서 우리는 1960년대 노동자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명절 대목을 앞두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졸음을 쫓느라 타이밍을 먹으며 일한 노동자들에게 사장이 보너스 대신 갈비탕을 사주던 진고개 식당을 지나 우리는 여공들의 모교라도 불리는 수도학원에 도착했습니다. 청년 전태일이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때, 그곳의 3만 노동자 중 80%는 여성 노동자였고, 그들 대다수는 오빠나 남동생을 공부시키느라 본인은 공부를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공들은 잠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를 하기위해 노력했는데, 수도학원은 최초의 검정고시학원으로 여공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던 곳이었습니다. 



미아리 버스 종점과 통금에 걸렸던 파출소

빗줄기를 뚫고 한 시간 이상 걸은 우리는 고려대에서 잠시 쉰 후, 다시 길을 재촉해 옛 미아리 버스 종점이었던 CGV 미아(옛 대지극장)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1960~70년대 전태일의 퇴근길과 비교해 많이 달라진 현재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덧붙여서 전태일이 남성이었기 때문에 가로등조차 없는 그 먼 길을 걸을 수 있었다는 점과 풀빵을 사줄 수 있었던 것은 함께 나눌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 우리들의 삶과 엮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참을 걸어 지금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는 파출소 자리(신일고등학교 부근)를 지나 쌍문동 집터로 향했습니다. 


전태일 열사 옛집터

전태일 열사가 가족과 함께 살기도 했고, 동료 노동자들이 새로운 꿈을 꾸기도 했던 옛 집터에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집터로 향하는 길이 ‘전태일 길’이 되었고, 아파트 입구에 옛집터 표지판이 있어 그 흔적을 찾을수 있었을 뿐, 우리가 걸어온 길이 내내 그랬듯 이곳이 예전에 논밭과 공동묘지가 있던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길었던 여정을 마무리하며 ‘전태일 추모가’를 함께 들었습니다. 이날 박준성 선생님은 때때로 ‘맨발의 청춘’과 같이 전태일 열사가 즐겨 불렀던 노래, 당시의 시대 상황을 보여주는 노래를 부르며 먼 길을 함께 걸을 힘을 북돋우어 주었습니다.



길을 걸으며 생각하고, 생각을 글로 쓰기

마지막으로 박준성 선생님은 비가 주룩주룩 오는 먼 길을 걸으며 참가자 모두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운을 떼며 “아마 전태일 열사도 이 먼 길을 걸으며 수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퇴근길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을 거예요. 길을 걸으며 생각하고, 그 생각을 글쓰기로 정리했던 과정이 있었으니 일기로, 평전으로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라는 말로 전태일로드를 마무리했습니다. 


비바람에 온몸이 젖는 날씨에 5시간 30분 동안 13.7km를 참가자 모두가 끝까지 함께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전태일의 고민을 지금도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 이번 피스로드의 부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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