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화[피스로드 2강] 영등포에서 만나는 쿠데타 & 다시 만난 세계

영등포에서 만나는 쿠데타 & 다시 만난 세계

 

오후에 강풍 예보가 있기는 했지만, 4월 12일 오후 1시의 문래근린공원은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벚꽃비가 나리는 더없이 평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만날 쿠데타의 역사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일상의 평화를 느끼며 30명의 일행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1961년 5·16 쿠데타가 시작된 영등포

<영등포에서 만나는 쿠데타 & 다시 만난 세계>라는 핫(hot)한 주제로 오늘의 피스로드를 이끌어주실 한종수 선생님과 함께 첫걸음을 내디딘 곳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공원 한편 철문 앞이었습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주택가 공원에 어울리지 않는 육중한 철문과 여러 개의 환기구가 있는 이곳은 5.16 군사 쿠데타 지휘본부였던 제6관구 사령부입니다. 이곳에서 박정희를 비롯한 쿠데타의 주동자들이 밤 12시경에 집결해 쿠데타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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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가 시작된 곳에 남아있는 ‘잘못된 상징’

답사 때는 굳게 닫혀있던 철문이 오늘은 활짝 열려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안에는 ‘박정희 대통령 흉상 보존회’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흉상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박정희의 흉상이 있고, 좌대에는 ‘5.16혁명발상지’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주변은 철거 요구와 훼손의 경험 때문인지 철제 울타리가 있고 ‘박정희 대통령 흉상과 지하벙커에 대하여 손괴(파괴)하는 자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민형사 처벌함을 경고함.-박정희 대통령 흉상보존회-’라는 푯말이 붙어있었습니다.

 

1966년에 세워진 이 흉상에는 이미 오래전 역사적으로 ‘반란’으로 그 성격이 규정되었음에도 여전히 ‘혁명’이라는 잘못된 상징이 남아있었습니다. 시민들은 서울 한복판 쿠데타가 시작되었던 장소에 쿠데타의 주범이자 독재자였던 박정희를 기리는 기념물과 모임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가까이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조차 이같은 것이 공원 안에 있는 줄 몰랐다는 반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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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12 쿠데타와 서울의 봄

문래동의 기원이라고 이야기 되는 ‘물래’ 조형물을 지나, 또 하나의 쿠데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23년 전 국민이 열광한 영화 ‘서울의 봄’에서 끝까지 군사반란을 막기 위해 애쓰던 이태신(실제인물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의 예하부대인 제52보병사단(화살부대)이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같은 공간에서 두 번의 쿠데타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참 슬프기도 했지만,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과 함께 이러한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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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산업화가 시작된 문래동

발길을 재촉해 우리는 MZ세대들에게 힙한 장소로 꼽히는 ‘문래창작촌’으로 향했습니다. 문래창작촌은 문래동의 공장들이 문을 닫은 자리를 젊은 예술가들이 채우며 자연스레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먼저 문래동 공장의 유래부터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문래동 공장의 시작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등포지역은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본에 의해 병참기지(군수산업)로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해서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도착한 곳은 ‘영단주택’이라 불리는 주택단지였습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문래동에 공장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필요해진 노동자를 위한 주택으로, ‘조선주택영단(주택공사)’에서 집합주택 형태로 공급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영등포지구는 문래동에 651호가 건설되었다고 하는데요, 지금도 일부 그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개발의 상징 & 산업의 뼈대에서 ‘예술 창작촌’으로

일제강점기 이후로 문래동은 꾸준히 그 시대를 대표하는 공장들이 들어서며 개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경성방직을 비롯한 면직물 공장, 제분공장, 산업의 뼈대를 이루는 철강 등 주요 산업은 시대와 함께 달라졌지만, 그 상징성만큼은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말, 문래동의 공장들이 문을 닫거나 이전하면서, 임대료가 저렴하고 천장이 높은 철공소 등의 공장에 예술가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함께 공장 담벼락과 철문, 거리 곳곳에 그림과 조형물이 생겼고, 점점 더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문래창작촌'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문래창작촌의 모습은 이랬습니다. 여전히 남아있는 공장들과 예술가들의 작업실, 전시실, 공장을 개조해 만든 카페와 음식점들이 좁은 골목골목을 채우며 자연스레 어우러져 독특하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걷기를 잠시 쉬고, 어딘가 자리를 잡고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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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산업의 흔적

‘문래창작촌’을 나온 우리는 195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공업이었던 이른바 삼백산업의 흔적을 찾아 발길을 옮겼습니다. 삼백산업은 밀가루, 설탕, 면화 등 흰색 원료를 이용한 산업으로 제분(製粉), 제당(製糖), 면방직(綿紡織)을 말합니다. 첫 번째로 발길을 옮긴 곳은 대선제분, 다음은 경성방직 사무동으로 두 곳 모두 현재는 공장이 아닌 문화시설, 쇼핑 시설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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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냄새가 온 동네에… 동양맥주 담금솥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공장 중에는 맥주공장도 포함됩니다. 1933년부터 맥주를 생산한 동양맥주(Oriental Brewerey)의 공장터도 영등포에 있습니다. 1997년 공장이 이전하면서 지금은 영등포공원으로 거듭난 공장터에는 여전히 지역의 랜드마크로 맥주 제조에 사용된 대형 담금솥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영등포공원 한편에는 ‘맥아더 사령관 한강방어선 시찰지’ 안내판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미 극동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가 1950년 6월 29일 한강전선을 시찰하기 위해 왔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 때의 시찰이 한국전쟁에 미군이 참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덧붙여 인천상륙작전 당시 반드시 필요하지 않았던 서울 시가전을 치른 이유가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기 위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전쟁의 비인간성과 폭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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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동 대공분실, 청소년 시설로

영등포공원에서 국회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인 대공분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의 총 다섯 군데 대공분실 가운데 하나인 신길동 대공분실은 현재,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으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주변 지역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수사하는 역할을 하던 대공분실이 청소년 시설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웠으나, 창문이 없는 구조 등 전형적인 대공분실의 형태를 보며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를 증언하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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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공원 안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공간 ‘C-47 비행기 전시관’

여의도공원 안에 커다란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신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평소에는 관심없이 지나치던 그 비행기가 1945년 8월 18일 한국 광복군 특공대(이범석, 노능서, 장준하, 김준엽 등)가 ‘광복군의 이름으로 조국에 진입하라’는 명령으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기 위해 타고 온 비행기라고 합니다. 물론 미군의 만류로 전투를 하지 못하고,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광복군으로 국내에 진입하여 직접 조국을 해방시키고자 했던 역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2025년, 피스로드를 하며 이 비행기가 더 각별해 보였던 것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담은 ‘헌법’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겨울, 12월 3일부터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표결될 때까지 여의도를 가득 채운 시민들도 C-47 비행기를 타고온 광복군들처럼 절실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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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의 밤, 시민들이 지켜낸 국회 & 국회가 지켜낸 민주주의

여의도공원에서 국회로 가는 길에 우리는 각 정당의 당사와 함께 지난 시절, 평화와 민주주의, 지방자치를 위해 힘썼던 다양한 공간을 둘러보았습니다. 이 기억들은 단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앞으로 다시 써야 할 민주주의를 위한 돌아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12.3 내란의 밤에 국회로 달려가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이 밤을 지새웠던 국회 정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시민들이 지켜낸 국회에 대해, 그 국회가 지켜낸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영등포에서의 4시간 동안 1961년, 1979년, 2024년 쿠데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 순간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한 발 더 성장시켜 ‘다시 만난 세계’를 만들어온 시민들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비바람이 부는 날씨에 피스로드에 함께 해주신 시민들 덕분에 오늘도 민주주의와 평화는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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