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료<한겨레> “남북 어린이들 평화롭게 만나는 ‘선생님의 꿈’ 이룰 날 오겠지요”


<한겨레> “남북 어린이들 평화롭게 만나는 ‘선생님의 꿈’ 이룰 날 오겠지요” 

[가신이의 발자취] 고 권근술 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 1주기를 추모하며


어린이어깨동무의 지원으로 2004년 건립한 ‘평양어깨동무어린이병원’을 방문했을 때 입원한 북녘 어린이들을 안아주고 있는 생전의 권근술 이사장. 어린이어깨동무 제공
어린이어깨동무의 지원으로 2004년 건립한 ‘평양어깨동무어린이병원’을 방문했을 때 입원한 북녘 어린이들을 안아주고 있는 생전의 권근술 이사장. 어린이어깨동무 제공


1996년 ‘한겨레’ 대표이사 시절 창립
“서로에 대한 미움을 물려줄 수 없다”
“형의 마음으로 북녘동포 감싸주세요”

지난 1월 5년마다 열리는 북한의 당대회가 열리자 연초부터 언론에는 누가 처음 썼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글자 수까지 똑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평소에 한반도 평화에는 관심이 없는 보수 언론도 이럴 때는 서로 질세라 다투어 기사를 쏟아낸다. 평생을 <동아일보> 해직기자로 살며 올바른 언론의 모습을 꿈꾸었던 권근술 선생님이 지금 계셨다면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2020년 3월15일, 권근술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 허망한 시간이 지나고 벌써 1년이 되었다. 기억하고 추모하고 싶었지만 소탈하게 살아오셨던 삶에 누가 될까 고민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지난 1년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계속되고 코로나19 상황에 북녘의 소식이 듣기 어려워지면서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평화적 민간교류가 다시 어둠의 긴 터널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깊은 걱정이 앞선다. 생각의 끝에서 선생님의 가장 큰 꿈이었던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즐겁고 평화롭게 만나는 일’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되새겨 보고 싶었다.



선생님은 1975년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다 <동아일보> 해직기자들과 함께 ‘동아일보자유언론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를 조직하고, 이후 1988년 동료들과 함께 국민주 신문 <한겨레> 창간을 이끌었다. 이후 한겨레신문사 사장 재직 때인 1996년 각계 인사들과 함께 ‘남북어린이어깨동무’(이하 어깨동무)를 설립하셨다.


2004년 6월 평양어깨동무어린이병원 준공식 날, 고 권근술 이사장과 남쪽 대표로 방문한 어린이어깨동무의 어린이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린이어깨동무 제공
2004년 6월 평양어깨동무어린이병원 준공식 날, 고 권근술 이사장과 남쪽 대표로 방문한 어린이어깨동무의 어린이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린이어깨동무 제공
북녘 어린이에겐 따뜻한 할아버지로
직원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이사장님’

통일은 우리 모두의 ‘소원’이었으나, 심각한 어려움에 부닥친 북녘 어린이를 살리고 남과 북의 어린이에게 평화로운 미래를 물려주는 일은 남에서도 북에서도 어른들에게 최우선의 일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남과 북 어린이들에게 더는 서로에 대한 미움을 물려줄 수 없다. 지금의 어린이들이 우리처럼 살 수는 없다. 평화로운 땅을 물려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보수언론의 민간단체 인도적 대북지원에 대한 ‘퍼주기’ 왜곡에는 ‘그것은 대북지원 전체에 대한 모욕이다. 언젠가 그들과 더불어 살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그들에게 원한과 증오는 심지 말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맞섰다.

선생님은 중요한 책임은 지셨지만 맨 앞에 서고자 하지는 않으셨다. 겸손을 지키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일에는 주저하지 않으셨다. 부드럽지만 변함없는 강인한 모습, 그래서인지 북녘 어린이를 위한 일을 도모할 때면 언제나 옛 동지들과 친구들이 함께 도와주시곤 했다. 어깨동무의 후원자들과 만날 때도 언제나 환한 미소로 함께하는 마음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의 표현을 하셨다. 2008년 평양의 어린이병원 개원식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비행기 안에서 선생님은 함께 가는 참석자들이 낯선 평양에 가서 혹시라도 불편한 일을 겪을까 싶어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혹시 마음 불편한 일이 생기더라도 동생을 살피러 가는 형의 마음으로 함께 북녘 동포를 감싸 안아주세요”라는 당부를 전하셨다. 비행기 안, 평양 가는 초행길에 긴장한 참석자들의 가슴이 갑자기 먹먹해지는 순간이었다.

북녘의 병원에 갈 때면 언제나 따뜻한 할아버지의 미소로 아이들의 손을 먼저 잡아주며 인사를 건네셨다. 정치인들이 한반도 문제의 정치 계산기를 두드릴 때, ‘나는 앵벌이 두목이다’라며 북녘 어린이의 건강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콩우유공장과 어린이병원을 건립하는 일에는 혼신의 힘을 다 했으나, 당신의 공으로 돌리는 일은 없었다.

‘나는 앵벌이 두목이다’ 당당히 자처
중요한 책임은 지되 나서지는 않았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이사장’은 조금은 어려워했을 법한데 활동가들은 사무실에서 권근술 ‘이사장님’을 뵙는 걸 좋아했다. 그만큼 함께 일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5년 전, 퇴임식을 준비하던 활동가들은 권 이사장님께 직접 드릴 감사패 글을 작성하며 매일 울었다. 본인들도 왜 우는지 모르며 차마 문구를 마무리하지 못하곤 했다. 아마도 편찮으신 이사장님과의 공식 ‘헤어짐’이 안타까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퇴임식 날 감사패를 들고 무대에 올라 모두 울음을 터뜨렸는데 그 바람에 사무국에서 제일 냉정하다고 평가받는 내가 문구를 읽을 수밖에 없었다.

“부드러운 미소와 강렬한 눈빛을 기억하겠습니다. (중략) 권근술 이사장님이 우리들의 이사장님이어서 참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객석에 있던 참석자들이 “아니 이사장 퇴임에 왜들 저리 우나”하고 의아해했을 것 같다.

남과 북의 민간교류가 위축되었던 사이, 우리가 만났던 많은 이산가족 어르신들과 북녘의 의료진들도 운명하셨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왔다. 아마도 이대로 만나지 못한다면 이제 더 서로 낯설어지고 만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두렵다. 그러나 믿고 있다. 북녘 사람들도 분명히 우리를 궁금해할 것이고 만나고 싶어할 것을.

선생님의 꿈은 평화교육을 받고 자란 남쪽의 청소년과 건강하게 자란 북쪽 청소년이 무기가 사라진 비무장지대에서 함께 캠핑하며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었다. 꼭 함께 이루어야 할 모두의 꿈이기도 하다. 이제 남과 북이 다음 세대를 위해 평화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 길에 시민사회가 포기하지 않고 함께 힘을 모을 것이다.

지금도 갑자기 사무실을 방문해 이름을 불러주실 것만 같은 남과 북 어린이의 ‘어깨동무’ 친구 권근술 선생님이 그립다. 그리고 여쭤보고 싶다. “남과 북 어린이들이 평화롭게 만나는 미래는 올까요?”

김윤선/어린이어깨동무 사무국장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9860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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