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료<개똥이네 집> 평화는 어둠 속에서 작은 초를 켜는 일과 같습니다.


지난 11월 15일,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에서는 <평화교육은 우리를 바꿀 것인가>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은 북아일랜드 평화공동체 ‘코리밀라’ 활동 이야기가 중심에 있었다. ‘화해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코리밀라는 아일랜드 북쪽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코리밀라는 아름다운 백사장과 푸른 바다가 펼쳐진 곳에 터를 마련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코리밀라의 대표 콜린 크레이그는 ‘분쟁 이후 평화 구축의 과제’를 강연했고, 코리밀라에서 활동하는 이본 네일러는 ‘평화교육과 좋은 관계 맺기: 인형극을 활용한 사례 연구’ 발표를 했다. 심포지엄에 앞서 이본 네일러를 만나 평화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본 네일러는 퍼펫 우먼(Puppet Woman) 대표로 인형극을 활용한 평화교육을 하고 있다.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이 심포지엄과 휴전선 비무장지대 방문, 한국 어린이들과 함께한 프로그램과 교사 대상 인형교육을 진행하였다. 

 

대담은 지난 11월 15일 창비50주년홀에서 이루어졌다. 왼쪽부터 김소원, 이본 네일러, 송여름이 이야기 나누고 있다.


 

김소원 | 반갑습니다. 선생님이 태어나 자란 곳과 선생님이 평화 활동가가 된 것이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본 네일러 | 저는 런던데리에서 태어났어요. 런던데리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의 국경 지역이에요. 제 할아버지, 할머니 가운데 세 분은 아일랜드 공화국 출신이고, 한 분은 북아일랜드 출신이지요. 저는 1952년에 태어났고, 북아일랜드 수도인 벨파스트에 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 고향을 떠나왔지요. 그 1년 뒤인 1972년에 제 고향에서 ‘피의 일요일’이 발생했습니다. 제 가족만 보더라도 가톨릭과 신교, 다른 정치적 지향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자연스럽게 분쟁을 넘어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파벌주의, 인종차별, 성차별, 나이로 차별하는 것은 인간 관계를 경직시켜요. 제 스스로를 평화 활동을 하는 사람, 분리주의에서 회복시키는 사람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아일랜드 섬에는 두 나라가 있다.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에 속해 있는 북아일랜드이다. 원래는 한 나라였는데 우리 나라처럼 분단이 되었다. 1541년 영국 왕 헨리 8세는 아일랜드 왕이 되었고, 그 뒤 영국 신교(성공회)를 강요하고, 영국인들을 이주시켜 그이들에게 많은 권력을 주며 차별 정책을 폈다. 구교(가톨릭)와 신교 사이 갈등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런던데리의 원래 이름은 데리였지만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공식 명칭이 런던데리가 되었다. 1919년부터 3년 동안 계속된 독립전쟁을 통해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자치권을 얻게 되었을 때 영국인들이 많이 이주해 있던 얼스터 지역은 영국에 속해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영국-아일랜드 협정’으로 얼스터 6개 지역이 북아일랜드가 됐다. 아일랜드 자유국은 그 뒤 영연방에서 탈퇴하여 완전히 독립해 1948년 12월, 아일랜드 공화국이 되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완전한 독립을 위해 싸우는 공화주의자들과 연합주의자 사이 내전이 1968년부터 ‘성 금요일 협정(벨파스트 협정)’이 체결되는 1998년까지 이어졌다. 1972년 1월 30일 일요일, 북아일랜드 런던데리에서 구교도에대한 차별과 영국 통치에 반대하며 시위를 하던 비무장한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쏴 14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피의 일요일’이다. 그 뒤 북아일랜드에서는 반영국 정서가 높아지면서 평화적으로 독립운동을 벌이던 북아일랜드 가톨릭교도들까지 무장투쟁에 참여했다.

  

이본 네일러

 

 

김소원 | 피의 일요일 사건을 담은 영화 <블러디 선데이>가 우리 나라에서도 개봉되었어요. 광주 민중항쟁을 다룬 영화 <택시 운전사>로 요즘 <블러디 선데이>가 다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혹시 그때 피해를 입은 가족이 있는지요?

 

이본 네일러 | 가족들 가운데 그 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어요. 어머니가 버스를 탔다가 총에 맞을 뻔했던 적은 있습니다. 늘 위태로운 상황에서 살다 보니 더 큰 위협으로 느끼지 못하고 평소처럼 버스에서 내려 장을 보러 갔다고 해요. 분쟁이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까 실내에 들어갈 때 반드시 검문을 거쳐야 하는 것도, 길을 걷다가 갑자기 수색을 받는 것도 너무 아무렇지 않아진 거죠. 그러다가 문득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만, 지금 나는 총에 맞을 뻔했고, 거의 죽을 뻔했는데? 이렇게 태연해도 되나?’ 하고요. 가족이 죽거나 다치지 않아서 체감을 하지 못했을 뿐이지 총에 의한 위험은 항상 우리 가까이 있었습니다. 저랑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 가운데 이 분쟁에 휘말려 희생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명은 젊은 청년이었는데 기자에게 사진 찍을 장소를 알려 주다가 반대 편 사람들에게 영국 정부의 첩자로 오해를 받아 총에 맞아 죽었어요. 교회에서 나오다가 아들이 총에 맞아 죽은 사람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분쟁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하필 그 시간에 있어서 총에 맞은 것입니다. 자기 회사 직원들을 대피시키다가 총에 맞아서 죽은 사람도 있었어요. 이게 당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해마다 6월 21일을 이렇게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날로 삼았습니다.

 

 

김소원 | 저도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는데 늘 검문이 있었습니다. 검문을 거부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냈어요.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것은 훨씬 더 큰 두려움일 텐데 그마저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게 참 마음이 무거운 이야기입니다. 코리밀라 활동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이본 네일러 | 저는 코리밀라 공동체와 1973년부터 관계를 맺었어요. 그리고 1974년에 국제 여름 캠프에 봉사자로 참여했습니다. 그 지역은 영국군이 관리하고 있는 곳이었고, 참여자들은 거의 공화주의자였는데, 사람들은 서로에게 친절했어요. 우리는 캠핑용 침대에서 잠을 잤고, 교회의 열린 공간에서 생활했습니다. 여덟 명에서 열 명이 작은 화장실 하나를 나눠서 썼어요. 그때 느꼈던 친절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참여자들이 영국군에게 저항하기 위해 총을 든 사람들이었기에 이 경험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육 과정에서 무엇을 가르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 교육이 편견을 가르치고, 증오를 가르치니 그 교육을 받아 적개심이 자라고, 화를 참지 못하면 총을 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어요. 이는 더 많은 죽음, 더 많은 상실, 더 많은 아픔, 더 많은 복수를 불러올 뿐이지요. 그런데 그곳에는 분쟁에 앞장서서 싸운 사람, 영국군에 있었던 사람, 자식을 이 분쟁으로 잃은 엄마들, 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서로 적대했던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 공화주의자와 연합주의자가 모두 함께 모인 거지요. 상실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서로 함께 어울렸습니다. 모두들 분쟁을 겪으며 적대하는 방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런 경험으로 저는 사람들이 한 번은 뒤돌아볼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어요. 우리 희망은 아주 작은 희망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세상이 우리 소망과 반대로 길을 가려 하지만 저는 이 작은 촛불, 작은 희망을 믿고 싶습니다.

 

김소원 |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 다른 행동을 한 사람들이 함께 만났음에도 서로 친절했다는 경험에서 희망을 보았다는 말씀이 깊이 남습니다. ‘만남’이 참으로 중요한 듯합니다. 우리 나라도 여러 면에서 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데, 먼저 할 일은 만나는 일이군요. 코리밀라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요?

 

이본 네일러 | 코리밀라는 1965년에 레이 데이비 목사가 만들었어요. 그이가 독일에서 지낼 때 드레스덴 공습으로 파괴된 도시와 절망을 보았어요. ‘이런 방법으로는 안 된다. 우리는 평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데이비 목사는 벨파스트 퀸스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코리밀라를 만들었어요. 레이 데이비는 나중에 독일을 방문해 자기가 보았던 폭격을 증언했어요. 영국 사람들과는 상종도 하지 않겠다던 독일 사람들이 그이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함께 끌어안았습니다. 용서와 화해가 일어난 것이지요. 코리밀라에서는 증오하고 저주하기보다 초를 하나 켜라고 합니다. 아일랜드 공화국 상원의원 고든 윌슨은 북아일랜드에서 테러로 인한 폭발로 아이를 잃었어요. 딸이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아빠, 정말 사랑해요.”였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모두에게 주는 메시지는 사랑이 악보다 강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은 두려움을 이겨 내게 하지요.

 

김소원 | 평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만남과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본 네일러 |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어린이어깨동무에서 하고 있는 일이 이런 교육이라고 들었습니다. 분쟁이나 갈등을 이해하고, 갈등을 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지요.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괴롭힘을 당할 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괴롭힘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공동체에서 겪는 괴롭힘에도 맞설 수 있게 됩니다. 북아일랜드의 몇몇 학생들은 갈등 중재, 특히 또래 중재에 대해 교육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놀이터에서 생기는 갈등을 어떻게 중재할지에 대해서 배우지요. 그러고 나서 북아일랜드 의회가 있는 스토몬트로 현장학습을 가요. 거기서 아이들은 분쟁으로 정치인이 나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은 지금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아.” “저 사람은 상대방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중간에 끼어들었어. 어떻게 상대방 이야기를 끝까지 다 이해했다고 할 수 있지?”라는 반응을 보여요. 아이들 눈으로 볼 때 정치인들 행동은 우스워 보일 뿐이지요. 민주연합당(DUP)과 공화주의 대표 정당 신페인당이 갈등에 파묻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이들은 자기 앞에 쌓인 건강 문제, 교육 문제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많은 문제들을 보지 못합니다.

 

김소원 | 우리 나라 국회에서도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어요. 국회의원들이 평화 교육을 꼭 받아야겠네요. 코리밀라에서 중요하게 보는 교육에는 또 어떤 것이 있나요?

 

이본 네일러 | 코리밀라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이 정치범이 대부분인 어느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아일랜드 역사와 정치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역사를 학교에서 배우지 않거든요. 이 강의를 들은 사람들 가운데 자기가 잘못된 정보에 귀 기울여 다른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도록 만들었다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자기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역사에 대해 배우는 과정 속에서 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역사 마주하기’입니다. 살면서 다른 사람들이 잘못한 행동을 보고 지적하는 것은 참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지적하는 손가락 말고 나머지 손가락은 우리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김소원 | 인형으로 평화교육을 하고 계시네요.

 

 

이본 네일러가 글라디스 인형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본 네일러 | 저는 정의롭지 못한 모습, 부의 불평등한 분배에 대해 알고 싶었어요. 처음으로 집중했던 것은 차 무역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차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 차를 재배하고 가공하는 사람들 역시 올바른 대가를 받아서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리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죠. 퀸즈대학 시절, 이 사실을 길거리 연극을 하며 알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1983년,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에서 보여 준 슬라이드에서 여성들이 드러내 놓고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에 인형극을 이용하는 것을 보고 ‘바로 저거다!’ 하고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글라디스가 태어났습니다. 글라디스는 벨파스트 최초로 여성노동조합을 만든 실제 인물이에요. (인형을 꺼내 보여 주며)이렇게 생겼지요.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인형극을 해 보기로 결정했고, 저는 인형도 만들고, 대본도 쓰고, 인형 극장도 만들었습니다. 인형극을 본 사람들이 얼마나 글라디스를 사람처럼 받아들였는지 극이 끝나고 제가 글라디스를 난롯가에 놓자 몇몇 나이 드신 관객들이 와서 “저기 앉아 있으면 더울 테니 조금 옆으로 옮겨 놓을게요.” 하고 말할 정도였어요. 인형극을 하기 위해 손에 인형을 끼우면서 우리는 생각합니다. ‘이 인형의 이야기는 뭘까?’ 그리고 손에 끼움과 동시에 우리는 이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피부색이 다른 인형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인형들, 어른과 아이…… 이들을 집어 들면서 우리는 또 생각하지요. ‘이 사람의 이야기는 뭐지?’ 하고요.

 

 

이날 대담은 시간이 모자라 더 진행되지 못했다. 그 뒤 있었던 발표에서 이본 네일러는 인형은 익명성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자기를 더 분명히 알아 나갈 수 있다는 점, 어린이들은 어색함 없이 인형의 입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발표한다는 점,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들을 이야기했다. 인형은 평화교육을 위해서든 관계 개선 활동을 위해서든 멋진 도구가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담이 있고 이틀이 지난 11월 17일, 이본 네일러는 서울시 마포구 성미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을 만나 인형으로 이야기를 들려준 뒤 즉석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본 네일러가 한 줄로 선 우리들 가운데 몇 사람을 따로 불러내었다. 나도 그 무리에 끼었는데, “이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하고 물었다. “안경을 꼈어요.” 하고 한 아이가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은 모두 안경을 꼈다. 그래서 같은 무리에 있는 사람들을 한 번 더 쳐다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람을 구분 짓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본 네일러는 또 사람들 한 무리를 골랐다. 그들은 푸른색 옷을 입었다. 두 번째 진행을 하는 것을 보고, 한 사람이 다양한 무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자기가 속한 무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지금은 나와 같은 무리에 있지 않은 사람들도 곧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저녁에는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에서 교사들을 상대로 진행한 인형 만들기 교육에 참여했다. 종이를 가지고 인형을 만드는데, 개인의 창의성이 발현되어 다양한 인형들이 만들어졌다. 모둠에서 자기가 만든 인형들을 가지고 그동안 겪었던 갈등 요인과 해결하는 과정을 인형극으로 만들어 공연까지 하였다. 어린이집이나 방과후 교사들은 언제나 아이들을 만나고 있기에 아이들의 갈등 상황이 금방 나왔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도 그 안에서 나왔다. 인형극을 통한 교육활동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퍼펫 우먼 누리집(www.puppetwoman.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본 네일러 Yvonne Naylor 지리학, 개발교육학, 평화학을 전공하고, 약 25년간 북아일랜드 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활동과 더불어 코리밀라 등 북아일랜드 민간단체와 함께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평화교육 활동가를 훈련시켜온 이본 네일러는 특히 인형극을 활용한 평화교육 프로그램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 왔다. 2000년 교사를 그만둔 뒤에도 코리밀라,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평화학 대학원, 북아일랜드 통합교육협의회 들에서 계속해서 평화교육 관련 주요 직책을 맡아 왔다. 2012년에는 퍼펫 우먼을 설립하고 인형극을 활용한 평화교육 프로그램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김소원 어린이문화연대 문화국장으로, 어린이연극 보는 소모임 ‘개구쟁이’에 함께하고 있다. 월간 <더 무브>에 어린이공연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어린이 마음에 남는 좋은 공연들이 무대 위에 펼쳐지기를 바라고 있다.

 

* 대담 통역은 동북아평화교육훈련원에서 활동했던 송여름 님이 해 주었습니다.

* 이 기사는 월간 개똥이네집 2018년 1월호(통권 146호)에 실린 글입니다. 개똥이네 집 허락을 받아 전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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